영화에는 내가 쉽게 붙들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있었다.
분명 무언가 찝찝한데,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여주의 모습이 내 모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생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전 남편은 재능만 있는 남자였다.
그는 재능은 있었지만 그것을 돈으로 만들지 못했다.
나는 능력은 작아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을 택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의 생존이 중요했다.
브래들리가 무인도에서 탈출을 꿈꿀 때,
여자는 물을 구하고 조개를 줍고 물고기를 낚고 멧돼지를 잡는다.
그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탈출 이후의 삶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는 일이 먼저였다.
하지만 현실은 무인도가 아니다.
먹을 것과 잠잘 곳은 아주 약간의 능력만으로도 해결된다.
그러니 생존력이 부족해도 절박하지 않다.
그는 나에게 복종할 이유도, 매달릴 이유도 없었다.
내가 돈을 번다고 해도 그가 나를 중심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울 이유도 없었다.
관계에서 권력을 잡지 못한 그는 탈출했고, 나는 그 생존력을 가지고 계속 살았다.
영화 속 생존 놀이는 흥미롭지만 결국 여자도 문명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잘 살아도 혼자 사는 일은 오래 재미있지 않다.
나는 내 생존력으로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생존력 안에서 다정하게 존재하고 싶었다.
남편의 능력 위에 기대어 평범한 아내로, 다정한 여자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자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가정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고, 가장의 역할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그도 나도 피해의식이 붙었고, 여자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나는 중심이 되었지만 가정이라는 세계 안에 있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 장면.
오픈카를 타고 앵무새와 함께 해안을 달리는 여주.
아름답지만 쓸쓸했다.
남자를 제거하고 부와 권력과 인기를 얻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모습.
겉으로는 자유지만 어딘가 고독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적당한 생존력을 가진 남자와 함께 살아가는 삶.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다정하게 존재하는 삶.
멋진 세상에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니라 세계 안에 있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오픈카 대신 스쿠터를 타고
원하는 곳을 가고, 날마다 영화를 보고, 재미있는 김밥 알바를 하고 돌아와 조용히 잠든다.
원하는 음식을 해 먹고 글을 쓰고 인수분해를 공부한다.
겉모습만 다를 뿐 영화 속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영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삶이었으니까.
자유와 구속은 분리될 수 없고 안락과 불편함은 함께 온다.
구속과 불편함을 제거한 욕망은 허황하다.
나는 군림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다정하게 기대고 싶었다.
어딘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은 내가 원했던 위치에 아직 서 있지 못했다는 신호일 것이다.
영화는 완결되었지만 내 현실은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