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길들이기 2

by 정오의 햇빛

무인도에서 여자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능숙하고 거침없다.


생존능력없는 환경에서 다친 남자는 여자의 모습이다.

생존력은 힘이 되고 무인도에서 더 이상 남자 여자는 없다. 상사와 부하도 없다. 생존 능력만이 위계를 결정한다. 여자 특유의 섬세함과 다정함으로 사랑스럽지 않은 브래들리를 돌보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브래들리를 자기가 원하는 세계 안에 가둔다.

그리고 여주의 능력으로 삶을 영위하는 데에 성취감을 느끼는 듯보인다.


브래들리가 괴로워하자 여자는 말한다.

너의 그 감정은 당연하다. 낮은 위치에 서본 적이 없지 않느냐. 여자는 이미 남자의 심리를 이해하며 어른다.

브래들리는 여자에게 독초를 먹이고 뗏목을 엮어서 그 섬을 탈출하려고 시도하지만 좌절되고 해변으로 돌아온다. 이 장면은 하우스 메이드의 여주의 모습같기도 하다.


탈출에 실패한 브래들리는 먹이와 잠잘 곳을 구걸한다.

드디어 브래들리를 구조하기 위해 약혼녀와 원주민이 무인도로 찾아왔다.


술에 취한 전 남편이 죽을 수 있음을 알면서 자동차키를 탁자에 놓아둔 것 처럼 자연스럽게 사고를 유발한다 여주는 약혼녀와 그 안내인을 절벽에서 제거한다.

욕망은 직접 칼을 들지 않아도 상황을 설계한다.


여주는 무인도에서의 원시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이 좋았다.

세계 500대 기업의 CEO인 브래들리에겐 돌아가야 할 곳이 분명했다.


남자를 문명 세계로 가지 못하게 다리를 붙잡는 건 어떤 이유로도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이었다.

남자가 죽은 그 무인도에서 여자는 그 생활이 아무리 좋아도 계속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여자도 뗏목을 만들어 목숨을 건 표류에 나섰고 현대로 돌아왔다.


마지막 장면 골프채로 공을 날리며 아름다운 문명의 장면으로 바뀌었을 때 환희롭지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시시한 마음이 들었다.


남자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뿐이지 여자 영화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에게 생존력이라는 갑옷을 입혔다.

성을 넘어 인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남자든 여자든 애든 어른이든 다를 게 없는 사람이다.


자기 욕망을 위해서 타인의 욕망은 무시되고 무시된 욕망은 언젠가는 돌아온다.

삶의 정점에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향해 부단히 움직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자기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가 결코 없다.


익숙한 전개는 편안하고 통쾌하지만 낯선 전개는 의아하고 놀랍고 뭔가 통쾌하면서도

저러면 안되는데라는 내적 저항을 넘지 못하는 영화였다.


이제 영화이야기를 다 했다.

나에게 이 영화는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하다.


영화를 보다가 여자를 보고 인간을 보다가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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