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길들이기 1.

by 정오의 햇빛

여주는 특이하다.

모자란 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넘치는 존재, 자신이 가진 힘을 모르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는 듯한 사람.

그녀는 7년 동안 성실하게 승진을 기다렸지만, 그 순간 낙하산 인사가 그녀 앞에 떨어졌다.


출장 중 비행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폭발하고, 여주와 남자 단 둘만 살아남는다.

해변에 표류한 그녀는 생존 전문가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반면 남자는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도 못하고, 야생 경험도 전무하다.


이전에 봤던 영화들—라퓨타, 시스터, 프로젝트 Y—이 상황이나 사건이 주도하는 구조였다면,

이 영화는 여주가 의도적으로 사건을 주도한다.


여주는 필요에 따라 상대를 제거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 명예와 돈과 인기를 얻는 장면은 이전 남성 주인공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주체적 선택이었다.


남주 영화에서 남성들은 황무지를 개척하고, 악을 무찌르며, 세계를 구하고 파괴했지만, 여성은 어디에 있었는가. 단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흔들고 미소를 띤 채 서 있었을 뿐이었던가.


영화 속 대사, “다정함을 약함으로 착각하지 말아”는 이 메시지를 압축한다. 여주는 다정하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결정적인 힘을 가진 존재다. 감독은 뻔한 스토리를 친절하게 포인트로 구분하며 긴장과 공포, 폭력 장면으로 관객을 깨어 있게 만든다. 소름 끼치는 장면과 압도적인 폭력 속에서도 여주가 중심이라는 점이 관람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남는 감정은 통쾌함이 아니라 찝찝함이었다. 남 주인공 영화에서 폭력은 카타르시스를 주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여전히 구조적 서사가 남성적 관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성별이 바뀌었을 뿐, 서사의 틀은 그대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성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움직이고 활약할 수 있다는 것, 기존 남성 서사 안에서도 새로운 주체성을 실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영화가 여성을 단순한 보조자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인공으로 그릴 수 있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직장 상사 길들이기”는 그래서 단순한 재난 영화도, 단순한 생존 영화도 아니다. 여성 중심의 서사를 경험하게 하고, 기존 관습과 상식을 뒤흔들며, 관객에게 묘한 찝찝함과 사유의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매거진의 이전글아직은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