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여기 까지 오기 위해 그동안 영화를 본 것일까?

by 정오의 햇빛

영화 휴민트

휴먼 과 인텔리전트의 합성어. 정보원

휴민트를 보며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묻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을 그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남한 공작원이 북한 정보원을 만난다.

서로의 필요로 시작된 만남이었다.

감시와 주어진 임무수행

그런데 그는 사랑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신뢰를 지키려 애쓴다.

상대의 삶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는 태도

위험속에서도 약속과 책임을 다 하려는 눈빛.

나는 그 장면이 아름다웠다.

그 수간 나는 남한도 북한도 아닌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동안 나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

노인을 그린 영화

아동 영화

동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이름보다 그들의 소속을 먼저 기억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우리 편인지 적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먼저였다.

삶을 본 것이 아니라 상황만 보고 있었다.

강아지를 보면 강아지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코끼리를 보면 코끼리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보면 고양이를 보았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을 보고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그 눈으로 사람도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남자이기 전에 사람이고 여자 이기 전에 사람이다.

노인이나 아이 이전에 사람이다.

체제 이전에 삶이 있다.

남한의 삶 북한의 삶.

정보원의 삶이 있고 공작원의 삶이 있다.

그 모든 자리에 각자의 두려움과 간절함이 있었다.

여자가 죽어가는 남자의 머리칼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눈물이 떨어진다.

신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에서

삶이 얼마나 붙잡고 싶어지는지 보았다.

체제도, 이념도, 임무도 사라지고

오직 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말한다.

낯선 곳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그 대사가

그녀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의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영화를 볼때 서사를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시선을 따라가는지도 모른다.

전체를 보지 않는다. 한 조각을 붙들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본 적이 있었을까.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본 날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묻고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