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존재. 생각과 사유
글쓰기는 대개 자아의 도구로 사용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느끼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혹은 타인의 자아를 빌려 쓰기도 한다.
저 사람은 어땠고, 무엇을 했으며, 어떤 사람이었는지.
결국 많은 글이 향하는 곳은 ‘자아파’에 대한 이야기다.
자아는 소중하고, 또 사랑스럽다.
우리는 자아를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읽어내는 데 익숙하다.
나는 쓸 자아가 없다.
내세울 만한 자아, 이야기로 부풀릴 만한 자아가 빈약하다는 감각.
어쩌면 내가 사유와 존재에 집착해 온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자랑할 자아가 없어서.
나도 자식자랑 돈자랑 외모자랑 부모자랑 하고 싶다.
없어서 하지 못할뿐이다.
나는 요즘 ‘존재 상태의 나’를 바라본다.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일.
어쩌면 인간은 자아에서 출발해 존재로 돌아가는 하나의 순환 위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는 자아가 아닌 상태, 자아를 벗어난 존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그토록 단단히 쌓아 올렸던 자아의 성이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떤 사람은 그 이후에도 자아를 더욱 공고히 한다.
어떤 사람은 자아를 희미하게 풀어 존재의 상태로 천천히 스며든다.
또 어떤 이들은 자아도 존재도 아닌 ‘알아감’ 그 자체의 현상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때로 그 치열한 알아감조차 결국은 자아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인간은 사유를 통해 조금씩 존재의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입고 있는 자아의 옷이 남루해서 벗기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밍크코트안에도 있는 것은 알몸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