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지만 불편한.
불편함이 있어도 공주와의 테니스를 끊을 수가 없다.
이 문장은 조금 모순처럼 들리지만, 요즘의 내 테니스 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공주와 치면 연습이 잘 된다.
코트에서는 연습용 공을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데, 그는 장애인 선수라 연습용 공을 가지고 훈련이 가능하다. 공이 많으니 랠리의 밀도가 높다. 공을 주우러 다니는 시간이 줄어들고, 치는 시간은 길어진다. 새벽 시간에도 코트를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과 오랜 시간 공을 치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공주와는 그게 가능하다.
이 정도면 파트너로서의 조건은 충분하다 못해 꽤 좋은 편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마냥 편하게 느끼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나는 공을 치다가 상대가 공을 놓치면 습관처럼 상대를 본다.
준비하고 있는지, 공을 기다리고 있는지, 호흡이 이어져 있는지를 확인한다.
나에게 테니스는 단순히 공을 넘기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리듬을 주고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주는 거의 나를 보지 않는다.
그는 시선을 공과 자신의 움직임에 두고 계속 진행한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쉬는 건가 싶기도 했고, 같이 치는 느낌이 약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코트에 서 있는데, 서로 다른 트랙에서 운동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마음 한켠이 자꾸 걸렸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아니면 정말로 호흡이 어긋나 있는 걸까.
오늘은 공주가 아닌, 조용이라는 사람과 공을 쳤다.
삼 년 정도 혼자 연습해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쳐 보니, 움직이는 공에 대한 대응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랠리보다 공을 주우러 다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짧은 볼보다는 긴 공을 치자고 했는데, 그 말을 따르다 보니 오히려 효율은 더 떨어졌다.
그러다 그가 다리를 삐끗했다.
당분간은 또 코트에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도 생각이 또렷해졌다.
공주가 아무리 마땅치 않아도, 지금 나에게 공주만 한 파트너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감정만 놓고 보면 거슬리는 지점이 분명히 있는데, 연습의 밀도와 효율만 놓고 보면 그는 분명히 유용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싫다고 해서 쉽게 버릴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의 핵심은 공주 자체가 아니었다.
내 훈련 구조가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데 있었다.
지금의 나는 공주라는 한 파트너에게 꽤 많이 의존하고 있다.
효율은 좋지만 선택지는 좁다. 정기적으로 나갈 수 있는 코트를 하나 더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피곤하다.
코트를 새로 뚫고, 시간을 맞추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랠리를 맞춰 가는 그 모든 초기 과정이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다. 테니스는 공만 치면 되는 운동 같지만, 실제로는 관계와 구조를 함께 굴려야 유지되는 운동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가장 쉬운 길 위에 서 있다.
조금 불편하지만 효율이 높은 길. 마음은 완전히 편하지 않지만, 몸은 충분히 훈련되는 길.
아마 공주와 계속 공을 칠 것이다.
다만 이제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이건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
공주는 유지하되, 언젠가는 새로운 정기 코트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사람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테니스를 조금 더 오래 치기 위해서.
어떻게 시작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