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끝을 달리면.

발은 떼보지도 못하고 끝난다.

by 정오의 햇빛

기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건 편하다.
이미 하고 있는 행동은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는다. 하던데로 하면 되니까.

문제는 다음 동작이다.


나는 늘 다음 행동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의 끝까지를 한꺼번에 보고 있었다.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운전을 40km 해서 가고, 거기서 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까지.

그 모든 공정이 한 번에 밀려왔다.


그러니 엄두가 날 리 없다. 큰 힘을 내야 할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지금 필요한 건 자동차의 시동을 켜는 일뿐이다.

아니 일단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일이다.


시동은 아주 작은 힘으로도 걸린다.
그런데 나는 시동도 켜기 전에 이미 시속 100km로 달리는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암도 그랬다.

진단을 받고도 병원에 가는 일을 1년이나 미뤘다.

이미 관뚜껑이 닫히는 장면까지 머릿속에서 보고 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거기가 끝이라면 뭘 굳이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고 그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할까.

그 생각이 나를 멈추게 했다.


내가 병원에 간 건 어떤 장면 하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1년을 방치해 암 4기로 진행된 사람.
보기 힘들 정도로 환부가 부풀어 오른 모습.


그 모습을 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관뚜껑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저 상태로 죽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그때 나는 움직였다.


그리고 치료를 마친 지금, 암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고통을 피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혼자 겪는 고통이 싫었던 것이다.


살겠다고 그 어려운 길을 일생을 걸어왔는데, 죽음 앞에서도 또 혼자 가야 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싫었던 것이다.

사십 년을 키운 자식이 있어도 돈이 있어도 마지막 가는 길 조차 혼자라는 사실.

그게 싫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혼자 가는 길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그게 가는 길이니까.


아무리 함께 걸어도 마지막 몇 분은 누구나 혼자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길 전체를 보지 않는 것.
시속 100km를 상상하지 않는 것.


그저,

시동만 거는 것.


새벽이면 김밥 도시락을 세개나 싸서 어둠속에 집을 나선다.

첫번 째 도시락은 테니스를 마치고

두번 째 도시락은 글쓰기를 마치고

세번 째 도시락은 김밥 알바를 하면서 먹는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 하는 첫번째 일은 도시락을 싸는 일이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밥은 꼭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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