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에서

존재하는 사람으로.

by 정오의 햇빛

인간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우리는 자동화와 컴퓨터를 만들어 왔다.
명분은 분명했다.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더 적게 일하고,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AI가 등장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자리가 위협받는다고, 인간의 입지가 흔들린다고, 불안이 커진다.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바라던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했는데 막상 그 문턱에 서자 소란을 떤다.


왜일까.

아마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일이 사라지는 것’ 자체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직접적인 문제,ㅍ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일은ㅍ 단순한 노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생존과 직결된 구조 속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일이 줄어드는 사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일자리는 먼저 줄어들 것 같은 예감.

그 사이의 틈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노동에서 해방되기를 원했지만 노동 없이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은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AI에 대한 공포는 기술 그 자체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준비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불신에 가깝다.

어쩌면 지금의 혼란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 온 변화가 현실이 되는 초입에서 우리는 잠시 균형을 잃고 있는 중일 뿐이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노동과 생존을 너무 단단히 묶어 둔 우리의 구조인지도 모른다.


나는 전혀 혼란이 없다.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몸도 정신도 흐리멍덩한 날들. 조여지지 않는 정신과 엉성하게 묶인 팔다리로 흔들리며 살아가는 시간.

그렇게 풀어헤쳐진 채 살아가는 즐거움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없음을 없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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