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트루먼같기도 하다. sns에 넘치는 감독이 된 트루먼들.
유튜브에서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을 만났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예전에도 분명 재미있게 봤던 영화였다. 설정이 기발하고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고개를 끄덕이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약간의 씁쓸함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씁쓸함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그 감정은 가슴을 지나 목을 타고 올라와 입 안에 침이 고이게 하고, 눈을 금세 젖게 만들었다.
짧은 영상 하나에 길을 잃은 기분.
내 마음이 미아가 된 것처럼 낯설었다.
트루먼은 열린 문 앞에 선다.
그리고 그를 시청자에게 뭐라도 한마디 하라고 붙잡는 목소리 앞에서,
그는 분노하지 않는다. 울부짖지도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웃으며,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울컥하는 이유는 탈출의 통쾌함 때문이 아니다.
그가 선택한 것이 ‘진짜’였기 때문이다.
안전한 가짜 세계와 불안한 진짜 세계 사이에서 그는 망설이지만 결국 자기 삶을 선택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 장면을 처음으로 다른 자리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구경하는 마음으로 봤다면, 지금은 조금 더 안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뭐 하는 거지.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람과의 접촉이 줄어들수록 삶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몸은 분명히 살아가고 있는데, 어딘가에서는 계속 관찰자가 깨어 있는 느낌.
그래서였을까.
트루먼이 문 앞에서 멈춰 선 그 순간이, 이상하리만큼 낯설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스스로를 감동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감동을 느껴보겠다고 애를 쓴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 몸의 반응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슴이 차오르고, 목이 메이고, 눈물이 고인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래 눌려 있던 감각이
잠깐 열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너무 오래 쓰지 않으면 잠시 얼어 있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한다.
얼어 있던 층이 녹을 때, 우리는 종종 이유 없이 먹먹해진다.
지금의 이 감정도 그와 비슷한 결일까.
나는 오늘, 내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너무 오래 자동으로 살아오다가 문득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본
순간일지도 모른다.
트루먼이 그 문 앞에 섰던 것처럼.
내 삶도 이런 것이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목이 메었던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트루먼의 온화한 미소와 정중한 인사. 엄청난 충격 속에서 보이기 어려운 태도.
어쩌면 사실적이지 않은 장면.
하지만 영화이기에 가능한, 관객을 끝까지 배려한 완벽한 엔딩.
동시에 세상을 향해 건네는 트루먼의 가장 조용한 복수.
진실을 알고도 머물기는 불가능하겠지.
나는 내 삶의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은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