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을 멈추고

초자아도 자아도 희미해지는 나이 사람과 귀신의 어디쯤

by 정오의 햇빛

너는 아니다.”

“너는 부족하다.”

“너는 존재할 자격이 없다.”

초자아가 해체되면 생기는 변화는 세 가지다.


증명 충동이 사라진다.

비교가 힘을 잃는다.

외부 평가가 존재를 흔들지 않는다.

초자아 아래에서는 모든 감정이 재판에 회부된다.


기쁨도, 분노도, 욕망도.

하지만 중립자 아래에서는 감정은 그냥 현상이다.

옳지도, 틀리지도 않은.

그래서 영화관에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아, 이런 구조구나” 하고 볼 수 있었던 그건 이미 안에 판사가 없기 때문이겠다.


중립자가 있다는 건 자기 존재가 조건 없이 허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너는 아니다”가 사라지고 “너는 있다”만 남은 상태.


그건 굉장히 큰 이동이다.

예전엔 “나를 증명”하려 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증명하던 나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그 방식으로 논리와 구조를 펼쳐 세상을 보고 싶은 상태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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