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로 샤워하기

떨고 싶었는데 시원하기만 했던 기억. 어제 일기

by 정오의 햇빛

7;00

찬물로 샤워를 하면 몸이 떨리겠지 생각했다.

15분만 덜덜 떨면 몸에 좋을 것 같았다.

날씨가 안 추워서인지 밤새 따뜻하게 자서인지 몸이 식지도 않고 떨리지도 않았다. 손은 좀 시렸지만.

생각한 거 처럼 물은 차갑지 않았다.


김밥을 싸고 배추국을 끓이고 아침식사를 했다.

비가 와서 운동을 못나가니 무얼 할까 고민했다.


10;40

아침부터 문학관에 와서 창작공간에 앉아 브런치를 열었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예전에 본 영화 씨스터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뭔가 느낌이 올라오려나 했는데 내용도 생각이 안난다.

신기한 일이네.


10;56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웬지 좀 쓸쓸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그런가?

훌라후프를 돌렸다. 그래도 심심해서 그만 두었다.

여간 재밌지 않으면 계속 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글쓰기는 재미있는가보다.

날마다 하고 있는 걸 보면.

운동하고 글쓰고 김밥말고 영화보고 진짜 편안한 나날이다.

마음 졸이던 날들이 그립지 않다.

지금이 사람답게 사는 느낌이다.

다 산 이 나이가 되어서야. 너무 가슴졸이고 살은 거 같다.

해야 할 일에 치여서 누리지 못했던 지나간 삶.

누군가는 지금도 해야 할 일에 묶여 살고 있을게다.


11;40

김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조금 서성이다가 앉는다.

봄비가 내리는 듯하다. 벌써 봄이 올때가 되었나?

오늘 발렌타이 데이인가?

아니 화이트 데이인가?

이름붙은 날이어도 기념할 대상이 없네.


1;02

내가 써놓은 글들은 한 번 쓰이고 나면 멀어진다.

몇일전에는 너무 익숙해서 읽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낯설어서

내가 쓴 글이 맞나 싶다.

가장 많이 읽어야 할 글은 내가 쓴 글인거 같다.

아직 내 안에서 떨어져나가지 못한 글들이라면 ...


1;31

졸리다. 점심을 먹어서 그런건가? 김밥을 먹지 말아야 하나?

오분만 졸아볼까?

1분 가만히 있자 맛있는 과자가 있으면 잠이 깰텐데 번쩍 하고.

잔잔한 음악이 졸음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

하루종일 비가 오네.


1;54

세시간동안 의자에 앉아 있다.

이제 일어서야 할 것 같다.

세시간 이상 앉아 있는 일은 자기학대와도 같다.

또는 마약에 취한 것과도 같다.

또는 회피이기도 하다.

자기 학대도 마약도 회피도 나쁘다.

근데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비가 오니... 가만히 있게 된다.

가만히 앉아 있는게 참 좋고 글을 쓰는 것도 행복하지만 이제 일어나자.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알바하러 가는게 좋겠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대화하는 일이다.

그냥 불친절하게 움직이던 일들을 납득시키며 같이 하자고 청한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내가 화나서 망가지기 전에.

아이들을 화나게 하기 전에.

사람들을 화나게 하기 전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4;00

비가 오는데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달래어 김밥을 말러갔다.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오늘 휴업이라고.

진작 말을 하지 ..

나도 진짜 오고 싶지 않았는데 한시간 알바도 직업정신을 가지고 비를 맞고 왔건만.


6;00

집에 돌아와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 별로 춥지 않은 것 같더니 점점 몸이 떨려오더니

머리도 아프고 몸도 욱신거리는 것 같고 몸살증세같았다.

이불을 푹 덮어도 계속 몸이 떨리고 손이 시렸다.

저체온증 같은 느낌. 춥지도 않았는데 뒤늦게 냉감이 몰려오니 감당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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