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질긴 관계도 단 칼에 끊어진다.
자식에 대한 내 마음은,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식이 나를 마지막으로 실망하게 만든 순간,
마음은 면도칼에 스친 듯, 피 한 방울 없이 깨끗하게 끊어졌다.
사람들의 관계가 이렇게 깔끔히 정리되는 이유는,
어쩌면 어느 순간 ‘정 떨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이든, 자식이든, 부모 형제이든, 마음이 끊어지는 순간은 상대의 바닥을 보고 난 뒤
나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음을 경험했을 때 찾아온다.
애착과 안타까움, 안쓰러움이 남아 있는 한 관계는 한 칼에 잘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관계란, 나의 기대와 요구가 더 이상 상대에게 묶여 있지 않을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애정을 느끼는 상대에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인간관계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마도 관계의 끝은, 상대도 나도 서로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순간
조용히, 그리고 분명히 찾아오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