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음과 살아짐 그리고 깨달음의 온도
깨달음을 향해 가는 길이 왜 이렇게 힘든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아는 차원에서는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약간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관심사들이 계속 밀려와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킨다는 점이었다. 에너지는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한 점에만 집중하기 어렵다.
깨달음은 물을 끓이는 것과 비슷하다. 물을 100도까지 올려야 끓듯, 깨달음도 일정한 온도와 에너지를 유지해야 한다. 약한 불로 오랫동안 끓이면 물은 식는다. 외부 환경이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기 때문이다.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관심과 관찰력, 애정을 충분히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바글바글 끓는’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
임계점을 넘어야 가능한 것.
예전의 나는 늘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미꾸라지가 진흙 속에서 물을 찾아 몸부림치는 것처럼, 나는 공간과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고, 살기 위해 계속 애써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소한의 노력만으로도 살아지고, 생존을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내가 ‘살겠다’고 의지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상태. 살고 있음과 살아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살고 있음: 적극적으로 의지를 발휘하며 삶을 살아가는 상태
살아짐: 최소한의 노력으로 존재가 유지되는 상태
젊었을 때는 살고 있음의 긴장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늘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그 긴장 속에서 몸부림치며 삶을 만들어냈다.
그냥 살아도 되는건데 왜 그리 살기 위해 애를 썼나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식, 재산, 사회적 역할 등으로 삶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노력 없이도 살아지고, 최소한의 공간과 에너지로 충분히 존재한다. 더 이상 세상을 위해, 혹은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이 상태는 허무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편안하다. 깨달음의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집중과 에너지를 줄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마음을 데워야 한다. 그래야 삶 속에서 ‘끓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