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75

나는 언제 짐이 될까.

by 정오의 햇빛

일본 영화 《플랜 75》를 보면서 자꾸 마음이 걸렸다.
75세가 되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국가는 그 선택을 돕는다. 영화 속 노인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자신의 마지막을 예약한다. 그들의 삶은 쓸쓸하고 공허하며, 사회에서 이미 밀려난 사람들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은 노인들이 스스로를 사회의 짐이라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지금 67세다.
가족과의 왕래도 많지 않고, 자주 만나는 친구도 없다. 일을 하고 있지도 않다. 생활의 형태만 놓고 보면 영화 속 75세 노인들과 아주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아직은 몸이 움직인다.
테니스를 치고, 운동을 가고, 영화를 보러 다니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이동할 수 있고, 스스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아직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다’는 감각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가능성을 전혀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만약 더 나이가 들어 이동이 어려워지고, 몸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혼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감각 속에 있을까. 정말로 영화 속 인물들처럼 삶이 텅 빈 느낌이 들게 될까.


아직은 닥쳐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다만 영화를 보며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다.
《플랜 75》가 그려낸 노년의 풍경은 현실의 평균이라기보다, 어떤 극단을 끌어당겨 보여준 세계에 가깝다는 점이다.


현실의 많은 노인들은 몸이 조금 불편해도, 관계가 넓지 않아도, 나름의 리듬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작은 산책, 단골 가게, 짧은 통화, 반복되는 일상 같은 것들이 삶을 의외로 단단히 붙들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가 건드린 불안도 완전히 허구는 아닐 것이다.


이동 능력이 줄어들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끊어지고, 스스로 쓸모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겹친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거창한 목표 대신 아주 작은 기준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

몸을 계속 움직일 것.
가능하면 얼굴을 마주칠 자리를 유지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을 멈추지 않을 것.

나는 여전히 글을 쓸 수 있고, 스스로의 상태를 이렇게 들여다볼 수 있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나는 아직 영화 속 인물들과는 다른 궤도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의 내가 어떤 감각 속에 있게 될지는 지금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오늘도 몸을 움직이고,
오늘도 바깥 공기를 한 번은 마시고,
오늘의 느낌을 이렇게 남겨두는 것.


아마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작지만 끊기지 않는 반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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