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순간
감독: Terrence Malick
주연: Richard Gere, Brooke Adams, Linda Manz
애비는 린다를 기숙학교에 입학시키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유산을 받았을까.
린다를 학교에 보내려면 지속적으로 돈이 필요한데.
애비가 싫다. 밉다.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어리석고 멍청하고 싫다.
영화 속에서 불쌍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자기 삶을 산다. 애비가 가장 이상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린다는 연출된 인물 같다.
영화를 흐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관객에게 친절한 안내자.
영상과 삶은 아름답고 시적이지만, 스토리를 보면 답답하고 진부하다.
빌은 감당할 수 없는 도박을 하고, 애비는 포주를 사랑하는 여자이고, 농장주는 착하고 순진하다.
농장주는 애비와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지주라면 여자를 소비하고 내쳤겠지만, 그는 결혼했다.
인간적이지만 기존 질서로 보면 잘못된 행동이었다.
풍경을 빼면 통속적인 영화다.
남녀 노동자가 부자의 유산을 생각하며 부자를 속이는 이야기지만, 그 삶의 천박함을 풍경으로 희석했다.
삶의 절박함과 천박함은, 점 하나 차이일 뿐이다.
서사는 시대상을 보여주지만, 자연만으로 빚어낸 아름다움이 영화의 중심이다.
감독은 인간을 배경으로 놓고, 밀밭과 노을과 메뚜기, 불을 주연으로 보여준다.
대사가 필요한 영화가 아니어서, 린다는 연출된 존재, 인간은 자연의 배경이다.
자연을 중심에 두고 영화를 보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다.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자연은 비극을 기억하지 않고, 사람도 비극 앞에 쓰러지지 않는다.
죄인도 영웅도 없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얽히고 사라질 뿐이다.
애비가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
기차는 서지 않고 천천히 흐른다.
사람들은 송사리처럼 그 흐름에 뛰어든다.
계절이 흐르면서 밀을 키우고 익히고,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삶을 이어간다.
기차는 멈추지 않고, 삶도 계절도 누군가를 위해 멈추지 않는다.
그저 흐른다. 올라타든 내리든 무관하다.
준비가 되어도, 준비가 안 되어도, 삶은 계속 진행한다.
애비는 생각 없는 여자처럼 보인다.
빌과, 남편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생각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가 아니라 의지 대상의 부재
그 순간의 의지대상일 뿐, 사랑의 대상이나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황에 몸을 맡기고, 흐르는 기차에 몸을 싣고, 만나는 사람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여자.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생존이 전부인 삶 속에서, 몸에 익힌 생존수단일지도 모른다.
애비는 창녀 취급을 받던 중 빌에게 구출되었고, 빌은 다시 그녀를 새로운 환경에서 창녀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포주가 되었을 뿐이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고 했던 최선의 선택과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파국이 되었지만, 파국은 새로운 출발을 내포한다.
죽음이건 떠남이건, 삶은 흐른다.
인간도 노을처럼 아름답다.
죽음도, 떠남도, 노을도, 불타는 밀밭도 모두 움직이는 존재로 아름답다.
천국의 장면은 자연 그 자체다.
살인도, 불타는 밀밭도, 기차도, 메뚜기들도 모두 자연의 일부다.
지주의 것도, 메뚜기의 것도, 불의 것도, 인간의 것도 아닌, 결국 자연의 것이다.
기차는 도착하지만 통과하며, 어디로 가든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종점은 멀거나 가깝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지점이다.
시간은 선형이 아니라, 끝없는 현재의 연속일 뿐, 미래나 과거는 없다.
종점은 등 뒤에 있고, 우리는 종점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
종점에 도착하는 순간, 시작점이 된다.
애비는 빌을 사랑하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빌을 싫어하지 않았을 뿐이다.
생존이 먼저인 삶에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한 수단이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선택과 거절은 다르다.
선택은 책임이고, 거절하지 않음은 방치다.
생존을 우선할 때, 선악, 옳고 그름, 믿음과 배신은 사라진다.
벌레처럼 단순한 행동일 뿐, 이성과 인간성의 자리는 없다.
인간의 삶은 공평하다.
부유하거나 건강해도 결핍은 존재한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판단과 비난을 불태우고, 인간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배운다.
사람은 살고 떠나고, 실수하고 사라진다. 바람은 불고, 노을이 지고, 밀은 불타고, 기차는 지나간다.
준비 여부와 상관없이, 삶이라는 기차에 사람들은 올라타 계속 이동한다.
영화는 인간을 자연과 같은 존재로 보는 관조의 시선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 판단은 줄고, 조금 멀리서 보게 된다.
시간 개념은 현재에 근접하고, 사람과 자연, 사물의 흐름과 삶을 같은 선에서 경험한다.
잠깐 머무는 천국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젊음 위에 나이듦을 경험한다.
사람도 풍경처럼 지나가는 존재이고, 자연은 움직이지 않고, 시간은 흐르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단지 사람이 그 풍경을 지나가고 사라질 뿐이다.
삶은 허공에 그린 그림이다.
형태는 있지만 남지 않고, 그리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순간순간 현재는 지워지면서 현재를 이어간다.
금강경에 말하듯, 모든 형상은 꿈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다.
분명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이 있었을 뿐, 형상은 없는 것.
천국은 붙잡히지 않는 현상이고, 우리가 경험한 천국은 잠시 나타난 형상일 뿐이다.
가끔 우리는 천국의 나날을 산다.
천국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다.
빌이 농장주인을 죽인후 애비에게 가 설명할 수 없고 당장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하는 장면.
그건 정말 최악의 장면이다.
단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속성을 보여주는 장면
거기엔 사랑도 미래도 삶도 없다. 그저 변연계의 충동에 사로잡힌 원시생물의 모습이고
그 말에 따라나서는 애비도 다를 바 없다.
무슨 일인지 물을 새도 설명할 새도 없이 떠났다.
그 밤, 숲속에서 보낸 하룻밤은 모든 삶의 가능성을 순간적으로 소멸시켰다.
위기 앞의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이미 위기경보가 울리는 뇌속에서는 부조리와 불합리 마비된 생존본능만 살아 움직인다.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혹시하는 가능성의 기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는 당연히 절벽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멈추지 못한다.
그 속에서 인간은 파국과 흐름 속에 휘말리며 살아남거나 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