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샤워가 어떤 영향을 주는걸까?
몸이 또렷해지는 순간.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난 직후의 느낌이 있다.
머리 꼭대기가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사물이 또렷해지고, 내 몸과 내가 딱 붙어 지내는 느낌이 든다.
마치 건물의 가장 꼭대기층에 올라선 듯한 감각.
이 느낌이 새롭고 신기해서 두정엽의 역할을 찾아보았다.
읽어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정엽은 몸의 감각을 통합하고, 공간 속에서 ‘나’를 구성하는 중추라고 한다.
촉각, 압력, 통증, 온도 같은 감각을 받아들이고 그 감각이 몸의 어느 부위에서 왔는지 구분한다.
눈을 감고도 팔과 다리의 위치를 아는 고유감각 역시 여기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또 두정엽은 내 몸과 외부 공간의 관계를 계산한다.
물건과 나 사이의 거리, 좌우 구분, 길 찾기,
그리고 몸의 위치 감각—바디 스키마.
이 기능이 흐트러지면 문틀에 자주 부딪히거나 방향 감각이 혼란스러워지고
심한 경우 왼쪽 공간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도 나타난다고 한다.
(자꾸 왼쪽 팔꿈치를 문틀에 부딪히곤 했던게 괜히가 아니었나보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두정엽이 ‘몸의 자기감’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기 몸에 대한 느낌, 주의의 방향 설정, 몸과 마음의 경계 감각.
이 영역의 기능이 떨어지면 몸이 둔하게 느껴지고 공간감이 흐릿해지며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몸에 내가 잘 들어와 있지 않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고 한다.
찬물 샤워 직후에 내가 느끼는 또렷함은 어쩌면 이 감각 체계가 한순간 강하게 깨어나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외국의 부자가 얼음을 채운 욕조에 몸을 담갔다가 옆의 사우나실로 들어가 몸을 데우고
다시 얼음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인상적이었다.
그래, 부자들이야 뭔들 못하겠어—
싶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부자가 아니어도 겨울 찬물 샤워는 할 수 있고
여름에는 욕조에 찬물을 받아 들어갈 수도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아직도 찬물 샤워를 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샤워 직전에 몸을 데우기 위해 이십 분쯤 운동을 한다.
찬물에는 떨리지 않는 몸이 플랭크 4분이면 와들와들 떨리고 상체 운동 8분이면 바들바들 떨린다.
요즘은 몸이 떨릴 때까지 운동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근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여는 즐거움보다
아직 더 큰 즐거움은 없다.
하지만 찬물 샤워를 하고 난 뒤 머리 꼭대기가 맑아지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나는 내 몸이 아직 충분히 깨어날 수 있다는 작은 증거를 하나 얻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은 강한 자극이 아니라, 몸과 내가 다시 정확히 만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