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률이 확실하다면 기꺼이 ...
오늘 공대를 졸업한 젊은이의 노동과 자본에 대한 글을 읽었다.
네 개쯤 읽었을 때 이상하게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능성의 언어가 현실의 밀도를 너무 가볍게 다룰 때 올라오는 그 끈적이는 불쾌감.
닦아지지도 않고 털어버릴 수도 없이 손끝과 머릿속에서 자꾸 증식하는 느낌.
노동과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몸이 아닌 생각으로, 시간이 아닌 논리로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담론은 가능성을 확대하지만 바닥의 밀도는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똑똑하다. (나도 언젠가는 요즘 젊은이였었다)
아니, 굳이 똑똑하지 않아도 계산은 나온다.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확률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변수까지 있다.
월급 × 재직 월수, 집값의 상승 속도, 그 사이에서 내가 점유할 수 있는 삶의 위치.
이 계산을 한 번만 해봐도 하루하루 일하고 한 달 한 달 돈을 모아 한 푼 두 푼 저축하는 삶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어쩌면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실제로 살아온 방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시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지금도 하루를 일하고
한 달을 버티고 조금씩 축적하며 살아간다.
물론 다른 삶도 있다.
누군가는 게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수익을 얻고 누군가는 연예인이 되어 큰돈을 벌고
누군가는 주식으로 눈에 띄는 부를 축적한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히 있다.
실제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자리는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을 바닥에 깔고 만들어진 자리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 자리를 꿈꿀 수는 있다.
그러나 그곳에 도달하는 확률까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탤런트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탑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주식시장에 들어갈 수 있지만 누구나 그곳에서 부를 쌓지는 않는다.
연예계에는 뜨지 못한 별들이 셀 수 없이 많고, 주식시장에는 소리 없이 사라진 깡통 계좌들이
말없이 쌓여 있다.
어쩌면 확률적으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식은
여전히 월급 × 재직 월수, 그 느리고 고루한 축적의 리듬일지도 모른다.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는 삶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복이 만들어내는 안정성 또한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가능성의 서사와 확률의 현실, 그 간극을 몸은 알고 있다.
내일도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젊은이의 노동과 자본에 대한 글을 보며 짜증스러웠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은 말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다.
그 젊은이의 글은 단 7개였다.
아직 어떤 성과도 드러나지 않은 자본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팔로워는 300명에 근접해 있었다.
브런치 글쓰기가 노동도 아니고 팔로워가 자본도 아니지만 어딘가 굉장한 수익률처럼 보였다.
글 7개로 한 달 만에 팔로워를 삼백 명 가까이 모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식에서도 성과를 낼 것만 같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스쳤다.
나의 짜증에는 그 숫자에 대한 놀라움도 분명 섞여 있었을 것이다.
팔로워 수는 글의 능력이라기보다 취향의 공략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자본의 생리를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쓰는 글은 자본과도, 노동과도, 인기와도, 재미와도 거리가 있다.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꾸 단순한 숫자 비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팔로워가 많은 사람의 글을 봐도 나에게는 좀처럼 끌림이 없다는 것이다.
육십 대 이상의 사람들이 쓰는 글에는 또 그들만의 결이 있다.
그러나 인생의 성취를 드러내는 글 역시 이상하게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나는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가 더 궁금한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들은 드러낼 성취가 있고 나는 그것이 없어서 오직 생각만 쓰고 있는 것일까.
곰곰이 나의 성취를 들춰보았다.
놀랍게도 성취라고 부를 만한 것을 선뜻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그냥 여기 알몸으로 서서 알몸을 불사르고 있는 사람 같다.
그 불이 꺼지는 순간 몸도 빛도 함께 사라질 사람.
…
어이구.
갑자기 아랫배가 뒤틀린다.
나의 위대한 성취는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 뿐인건가?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위대한 성취인건가?
성취라고 치지도 않는 디폴트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