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것.

해소되지 않는 불평은 대상과 무관한 투사일 뿐.

by 정오의 햇빛

오늘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끄집어낸 것 같다.

무엇을 새롭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봐야 새롭게 보이는지 그 실질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에 접근하지 않은 채 ‘새롭게 봐야 한다’, ‘처음처럼 느껴야 한다’, ‘그래야 흥미로울 수 있다’고 되뇌는 것은 허무한 염불에 그치고 만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갈 수 있을 때, 지금의 이 깨달음도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결국 해결 방법이 없는 아이디어는 막연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것은 생각이 아니다. 그저 불평일 뿐이다.

불평하고 싶은 마음을 현실에 투사한 것에 가깝다.

그것이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진짜 문제였다면, 이미 해결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해결을 향하지 않는 문제 제기는 결국 불평에 머물고, 싫음의 원인을 외부에 두게 만든다.

그것은 자극에 대한 동물적인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내부의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외부 환경에 투사했다면, 그 순간 이미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그러니 그 이후를 더 생각할 필요도,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유 역시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평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목적이 이미 해소되었는데, 더 생각할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불평을 말하고 싶어서 외부 환경을 향해 계속 투덜거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볼 일은 분명하다. 그 불평과 불만의 근원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불만스러워서 환경을 탓했고, ‘재미없다’고 하소연했던 것일까.


그 불평과 하소연은 애초에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리 환경을 탓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 불평과 불만은 아무리 말하고 느껴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근원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명확하지 않은 불평과 불만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투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 나는 무엇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는가.

둘, 현실을 흥미롭고 포근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 필요한가.


그러나 순서는 분명하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나는 도대체 무엇의 부족감에 시달리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느꼈던 것은 단순한 지루함이 아니었다. 어쩌면 충분히 살아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데서 오는 허기였는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하루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그 하루를 받아들이는 내 감각이 무뎌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재미가 없어서 불평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이미 소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대가 닿지 못한 자리, 혹은 채워지지 않은 어떤 감각의 공백.

그 빈자리가 외부를 향한 투덜거림으로 번져 나갔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환경이 아니다. 내 안에서 무엇이 마르고 있었는가, 나는 무엇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하루를 지나오고 있었는가.


필요한 것은 환경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일 것이다.

새롭게 본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처음의 감각으로 되돌려 받는 일에 가깝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익숙하다고 지나치기 전에 잠깐 더 머무는 것.

속도를 조금 늦추고, 이미 안다고 단정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


어쩌면 흥미는 바깥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깨어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치고 있던 순간을 다시 붙잡아 보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나가던 하루를 조금 더 천천히 붙잡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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