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길 걷기

용암이 흘러내려 만들어진 길.

by 정오의 햇빛

어제의 허전함과 비내리는 며칠간의 질척한 공허함은 견딜만했다.

어쩌면 오늘 규현이를 만나 숲길을 함께 걷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잠깐이나마 눈을 마주치고, 호흡을 나누고, 같은 공기 안에 머무를 수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간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즐겁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견딜 만한 마음으로 하루를 통과할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의 그 희미한 기대감이 내 몸에 작은 에너지를 넣어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침 운동도 할 수 있었던 걸까.


기대라는 것은 꼭 사람을 들뜨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때로는 마음을 위로 끌어올리는 대신, 바닥으로 꺼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쪽에 더 가깝다.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나는 거창한 만남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깊은 대화도 아니고, 오래된 관계도 아니었다.

그저 숲길을 함께 걷고, 몇 번 눈을 마주치고, 같은 공기를 나누는 시간.

생각보다 사람의 마음은 그 정도의 접촉에도 반응한다.


몸은 누군가와 같은 리듬 안에 들어갈 가능성을 미리 알아채고, 그 가능성만으로도 조금 느슨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며칠 동안 이어지던 공허 속에서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던 것은.


나는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나는 완전히 혼자일 때보다, 짧고 가벼운 연결이 예고되어 있을 때 몸이 먼저 살아난다는 것을.

내일 숲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걷고, 스치고, 지나갈 뿐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같은 공기 안에 잠시 머무르는 일,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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