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뇌의 상관관계1

-흔들리는 전문가. 멈춰버린 시계의 해부학 중에서 -

by 정오의 햇빛

편도체는 원시뇌이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시킨 경보시스템

위협을 느끼는 순간 편도체는 전전두엽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자율신경계를 장악한다.

아드레날린과 코티솔이 쏟아진다.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아픔을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고 정리되지 않은 채 뇌 어딘가에 고립되어 있다.

인간의 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멈춰세우고 그 순간의 공포를 신체에 박제해버린다.


인간의 뇌는 거짓을 영원히 지탱할 만큼 강인하지 못하다

생존을 위한 본능은 결국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이 과부하된 비상상태를 종료시키려 한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숭고한 한계이자 치유의 시작점이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그 정직함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뇌가 처리하지 못한 감정적 찌꺼기이자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신체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이성적인 대화나 통찰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의 몸이 보내는 미세한 떨림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내면의 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들리는 전문가. 멈춰버린 시계의 해부학 중에서 가져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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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부분을 가져온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다.

머리속에서는 어떤 연관성과 필요에 의해 떠왔을텐데 명백한 설명은 아직 힘들다.


트라우마가 활성화되는 순간 편도체가 활동하고 전두엽은 하이재킹 당한 상태로 멈춘다.

이때 브로카상태가 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굳어진 상태.

위기상태에서는 언어나 글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때 내부에 가득한 경험했던 느낌과 감각은 활성화되고 표현은 불가능해진채 시간은 멈추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로 재경험된다.

그것이 과거의 위기라는 것을 인식할때까지.

글을 쓰는 일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언어로 재구성해서 시제를 부여하는 일이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 끝날 수 있도록.


의미를 파악하고 알아듣는 일은 측두엽의 베르니케 영역이 담당한다.

뇌의 브로카영역은 Broca’s area 말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뇌 부위. 쉽게 말하면, 생각을 문장으로 조직하고 입으로 표현하게 해주는 곳이다.

뇌의 하전두회부분. 뇌의 왼쪽전두피질에 위치한다.

역할은 언어생성. 문법과 문장 구성 발음계획이다.

말하기 쓰기

이곳이 손상되면 브로카 실어증발생.

특징은 말이 느리고 끊기고 단어 몇개만 겨우 나온다.

하지만 이해력은 유지되고 본인은 답답함을 느낀다.


이해는 측두엽의 베르니케영역이 담당한다.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다.

브로카영역이 손상되면 무슨 말 할지는 아는데 입으로 못꺼낸다.

생각은 있는데 출력장치가 고장난 상태


언어를 아는 것과 말로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단순한 생각은 가능하다. 배고프다 저사람 싫다. 이런 건 느낌이나 이미지다. 그러나 문장형태로 생각하려 하면 막힌다.

생각이 덩어리로 있는데 언어로 풀어내는게 안된다.

그래서 생각은 있는데 말이 안되는 상태다.

느낌으로 생각은 가능하지만 문장으로 생각하는 능력은 무너진다.

말이 안되면 글도 같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자동화된 표현은 가능하다.

이름쓰기 자주 쓰던 문장.

습관처럼 저장된 것은 나올 수 있다.

글은 못 써도 느낌은 그대로 있다.


언어는 생각 그 자체가 아니다.

생각은 감각 이미지 감정이 들어있고 언어는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그래서 브로카영역이 손상된 사람은 생각은 풍부한데 표현수단이

무너진 상태다.


말이 안되는 사람은 대부분 글도 어렵다.

둘다 문장만드는 능력을 쓰기 때문이다.

언어 없이 하는 생각들은 이미지,감각,몸의 느낌,감정,직관으로 한다.

언어는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도구이다.

언어가 생기면 생각이 더 선명해진다.

브로카영역이 손상되면 느끼고는 있는데 설명할 수 없는 상태이다.

느낌은 시작이고 언어는 완성이다.

브로카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다 손상되면 이해도 못하고 표현도 불가능해진다.

공포시 편도체는 전두엽만 가로채기에 베르니케 영역은 기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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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이야기를 가져왔는지 여기까지 써보니까 알 것 같다.


공허. 허무 쓸쓸함. 이 감정들은 너무나 생생한 현재의 감정같다.

환경은 충분히 공허하고 허무하고 쓸쓸하기에 적당하다.

난 단 한 순간도 이 감정이 과거의 감정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어제 왜? 라는 글을 계속 쓰면서 나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지루하다 싶을 만큼 반복하면서 진술했다.

마치 나의 감정을 취조를 받듯이 세세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아무 느낌이 없었다.

평생 그런 날이 없었던 것 같은데 처음으로 고요한 아침을 맞이했다.


이건 어마어마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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