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석유값이 대폭 절약된다.
요즘 나는 가끔 찬물로 샤워를 한다.
몸에 좋다느니, 교감신경이 어떻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그게 핵심은 아닌 것 같다.
찬물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몸의 반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찬물이 몸에 닿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샤워를 마친 뒤에는 부교감신경이 작동하면서
몸이 이완되기 때문에 상쾌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찬물로 샤워를 한다는 건 사실 별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몸은 따뜻한 물을 원한다.
그런데도 그걸 참고 찬물을 맞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버텨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몸이 산뜻해지는 것도 있지만, 어딘가에서 작은 만족감이 올라온다.
아, 내가 이걸 해냈구나.
아마도 그 기분이 더 큰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젊었을 때는 굳이 이런 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삶 자체가 이미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승부 같았다.
버티는 것, 견디는 것, 해내는 것.
그런 것들이 삶의 기본 상태였다.
그래서 특별히 ‘어려운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삶이 예전처럼 매일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찬물 샤워 같은 작은 도전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해내고 나면 스스로가 조금 대견해지는 일.
찬물 샤워를 마치고 온몸에 퍼지는 산뜻함은 단순히 물의 온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그래도 나는 아직 나에게 작은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느끼는 순간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찬물샤워를 하려면 삼십분의 마음의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
아주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되는양. 고행의 순간이라도 되는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