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실체 6

나의 돌파경험

by 정오의 햇빛

내 삶에서 가장 큰 돌파는 이혼이었다.

부모의 죽음도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리 큰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혼은 참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결혼이 쉽다면 이혼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결혼도 쉽지 않았듯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그 생활을 마치는 것도 모두 어렵기만 했다.

계속 나는 자신을 이해시키고 속이고 달래고 위협하며 한숨을 쉬어가며 살았다.

아마 영원히 그렇게 살았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의존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허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등뒤에 적어도 든든한 바위까지는 아니어도 나무 한그루는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나무판자도 없는 허당이라는 것을 느꼈을때 이 관계는 더 이상 지속하는 것은

자기학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고문이란 말도 있다.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가장 큰 동력은 남편의 역할이 아니라 내가 나를 속이는데 있었다.


남편 아내 가정 부부 이런 말들은 원래 실제 관계와 역할이 있을때 의미가 있다.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남편. 없어도 있어도 아무 차이가 없는 사람이라면 없어지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라는 게 환상으로 존재한다면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 환상을 붙들고 계속 환상에 기대면 인생에 파국이 온다. 사람이 현실과 맞지 않는 관계를 오랫동안 이름만 붙잡고 유지하려 하면 삶의 에너지 시간

자기 판단이 계속 소모된다. 그것은 깊은 우울을 부른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환상을 인정하는 것보다 환상에서 나오는 것이 삶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상대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 아니 속일 수도 없다. 어떻게 무슨수로 정체를 감추겠는가?

그럼에도 속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속인 사람은 없는데 속은 사람만 있다.

사람은 타인에게 속지 않는다. 자기 믿음에 속을 뿐.

현실 구조를 미화하지 않고 희망으로 보지 않고 사실을 본다면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환상은 현실에 설 수 없을 때 붙잡게 되고 현실을 볼 수 있게 되면 환상은 벗겨진다.

엄마에 대한 의존 결혼이라는 이름표. 이 두 환상이 해체되고 나서야 현실에 홀로 섰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자기 크기를 조금 더 정확하게 보게 된다.

큰 해방도 아니고 극적인 변화도 아니고 구조가 이거였음을 알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움의 실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