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도 않지만 의식에 올라오지도 못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허둥지둥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이 좋다.
몸의 따뜻함을 느끼고, 팔다리를 천천히 움직여 보는 그 아침의 여유.
잠자리에서 이런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나는 날마다 그 행복을 누리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말해본 것은 처음이다.
사람들은 관계에서 표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어떻게 아느냐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말은 상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지만
말해보지 않은 감정은 쉽게 잊힌다.
말을 한다는 것은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인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의식화하는 행동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큼이나 자신과의 관계에도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몸의 불편함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잠을 자면서 몸을 뒤척거릴 때 힘들었다.
몸을 바닥에서 들어올리는 일이 힘들었다. 간신히 들어 올려도 너무 아파서 뒤척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자세를 바꾸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냥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불편하긴 했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말해본 적도 없다.
기껏해야 자다가 돌아눕을 때 끙 하고 소리를 내는 정도였다.
일상에서도 “돌아누울 때 몸이 아파.” 이런 말을 해볼 대상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참 뜬금없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아픈 이유는 코어 근육이 거의 무력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어 운동을 해야 한다고 날마다 생각하지만 한 적은 없다.
요가를 할 때도 운동을 한다기보다는 동작을 따라 하는 시늉에 가까웠다.
동작이 몸에 남을 만큼 지속하지 않고 바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찬물 샤워를 시작하면서 준비 운동으로 코어 운동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헐거워지고 이러다 어느 순간 허리를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다.
코어 운동과 찬물 샤워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누울 때의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밤에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돌아누울 때 아프지 않고 소변 때문에 깨지 않게 되자 잠에서 깨지 않고 비교적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
몸의 변화를 느끼면서 나는 이 변화가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코어에 힘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코어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돌아누울 때마다 여기저기 몸이 아팠지만
그것이 운동이 필요한 증상이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근육의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나는 늘 팔다리 운동만 했다.
팔다리는 이미 충분히 튼튼함에도 불구하고.
팔다리 운동은 재미도 있었고 힘도 들지 않았다.
망가진 곳은 돌보지 않고 튼튼한 곳만 계속 강화하는 이 미련함.
익숙한 곳만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몸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