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느끼는게 가능한가2

평생 처음하는 경험. 감각은 자동변환된다. 감정으로.

by 정오의 햇빛

오늘 찬물 샤워를 하면서 싫어하는 마음 없이 찬물을 경험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동안 내가 원했던 게 바로 그거였던 것 같다. 싫은 일을 싫어하는 마음 없이 하는 것.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니.


찬물이 뭐 달가울 수는 없다. 이 추운 겨울에 찬물로 샤워한다는 거 자체가 좀 무모한

도전이기조차 하다. 그렇지만 내가 찬물로 샤워하겠다고 결심을 했다면 언제까지

그 찬물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그 일을 할 것인가.


그 거부감이 너무 크면 결국은 찬물 샤워를 할 수 없겠지. 그렇지만 적당한 정도의 싫음을

가지고 계속 찬물 샤워를 하면서 찬물이 싫다, 춥다, 아우 하기 싫다는 감정을 계속

경험한다면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싫어를 경험하는 일을 왜 해야 하는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면서도 싫어를 외치고 있다면 너무 이상한 태도 아닌가?

내가 살아 있으면서 살고 있는 게 싫다라고 짜증을 부린다면 도대체 어디서 삶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얼마나 굉장한 깨달음인가?

내가 그것을 하면서 그것이 싫어! 싫어! 이것이 너무 싫어! 싫어! 하면서 그것을 한다는 건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이다. 어린 아이에게 쓴 약을 먹이면 그 아이는 그 약을 먹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하면서 뱉어낸다. 어린 아이니까 그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할머니인 내가 찬물 샤워를 하면서 싫어 하는 감정으로 한다면 그것은 정말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가우니까 싫다가 아니라 이건 차가운 거야. 그리고 싫으면 그걸 하지 않아야 돼.

이 나이에 억지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 뭘 얼마만 더 살겠다고 싫은 일을 참아가면서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돌아보면 일생을 몰아붙이면서 살았다. 몰아붙이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조차도 몰아붙였고 일을 하는 것도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남들은 나를 철인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 말이 썩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인생 전체를 몰아붙여서 오늘까지 왔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찬물에 동의했다.


이 경험은 삶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는 순간이다.

반복되는 훈련과 의무감 속에서 깨닫지 못했던 감정에서 놓여남을 경험했다.

몰아 붙이지 않고 싫음없이 단지 감각으로만 경험하는 것.

삶과 나 자신을 감정이 아닌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



오케이, 예스. 영성수련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예스를 배우지 못했었다.

그런데 찬물 샤워 한지 이십일 만에 예쓰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도대체 무엇이 계기가 되어서 오늘 있는 그대로 차가운 물을 만날 수 있었던 걸까?

이십일간 싫은 물에서 차가운 물로 변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있는 그대로 느끼는게 가능한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