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느끼는게 가능한가 4

한번만 경험하면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그 한 번이 쉽지 않다.

by 정오의 햇빛

어쩌다가 나는 이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이런 경험을 하게 된 이유가 뭘까?


내가 원했던 것은 자유로움이었던 것 같다.

돈을 벌면 결핍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고 사람을 만나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은 삶의 여러 구속에서 자유로워졌어도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부분은 감정이었다.

싫으면 싫은 거고, 역겨우면 역겹고, 내가 느끼는 그 부정적인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찬물 샤워에서 싫다라는 감정을 빼버리는 데 성공하자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가능하다니.

지금도 사실 차가운 건 싫다. 추운데 차가운게 어떻게 좋을 수 있는가.


나는 상황을, 감각을, 상태를, 현상을 모두 다 감정으로 번역하고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 번역기가 작동되기 시작하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사라지고 내 감정으로서만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싫던가 좋던가. 밉던가 사랑스럽든가. 아무리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느끼라고 선생들이

외쳐도 나는 항상 물음표였다. 그게 되나? 그들은 가르칠 수 없는 걸 가르치려고 노력했고

나는 배울 수 없는 거를 배운 척 흉내내기만 했다.

그런데 나는 찬물 샤워와 좋다는 걸 너무너무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이 찬물 샤워를 평생 하고 싶다 라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평생 하기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아우 싫어. 아우 차가워. 아우 추워. 아우 이건 진짜 싫어.

나의 일생은 어쩌면 두 지점을 왕복하며 사느라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싫어와 좋아 사이, 이뻐와 미워 사이.

돈을 벌면 주머니가 두둑해져서 좋은데 일하는 건 진짜 싫다. 그래도 해야 해.

애를 낳아서 키우는 기쁨이 있지만 너무 힘들다. 말 안듣고 이기적인 모습도 보기 싫다.

친구를 만나면 즐겁고 신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시기심과 비교의식이 올라와서 싫다.


근데 찬물 샤워는 너무 명백하게 내가 만들어 낸 상황이다.

아무도 나에게 그걸 강요한 사람이 없다.

완벽하게 내 선택으로 하는 행동을 왜 싫어하면서 해야 하는가.

어떤 일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것일까? 어제를 돌아본다.


어제는 새로 출근해서 긴장이 심했고 몸이 힘들었다. 게다가 계속 콧물이 멈추지 않는다.

감기는 아닌 거 같은데...

저녁에는 김밥알바를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느라 두시간을 앉아 있었다.

집에 와서 오늘은 찬물 샤워를 하지 말고 일찍 자자고 자리에 누웠었다.


어쩌면 어젯밤에 찬물 샤워를 하지 않고 잠잔 것이 나에게 큰 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싫어서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받아준 거.

그 한 번의 허용이 오늘 나에게 싫음을 극복하게 한 이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의 귀찮음과 싫음을 허용하지 않고 몰아붙이던 내가 선선히 그냥 자는 것을

허락해 준 일.


그리고 오늘 아침에 싫음없이 찬물샤워를 하고 지루함없이 에이비 슬라이드를 14분간

했다. 이건 진짜 기적이다.


느낌이 아니라 감정으로 살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비폭력대화를 배웠어도 느낌이 뭔지 감정이 뭔지를 분간하지 못했던 거야?

그랬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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