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필요를 못 느끼고 살았는데... 이젠 필요가 절실해진 나이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등록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어떤 목록에 올려진다. 이름이 불리고, 안부가 오가고, 명절이면 자연스럽게 찾아가고, 서로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관계. 그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오랜 시간 반복된 확인과 암묵적인 합의로 유지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같은 가족 안에서도 등록되지 않은 존재들이 있다.
분명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어떤 이는 서로의 삶에서 빠져 있다. 그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의 감정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도 묻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곁에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목록에서 제외된 상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이들은 왜 등록되지 못한 것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이 자동으로 관계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관계는 결국 ‘지속적인 호출’로 이루어진다. 이름을 부르고, 상태를 묻고,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응답하는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점점 더 분명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 호출이 멈추는 순간, 관계는 서서히 흐릿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대는 ‘등록되지 않은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서 다시 등록될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등록은 반드시 가족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 밖에서 더 선명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내가 말한 사소한 것을 기억해주고, 나의 상태를 묻고 기다려주는 순간—그곳에서 나는 다시 ‘존재하는 사람’으로 등록된다. 그 관계는 혈연보다 느슨할 수 있지만, 훨씬 더 의식적으로 만들어진다.
결국 등록이라는 것은 호적이나 이름표에 찍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식 속에 내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등록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 또한 누군가를 등록해야 한다. 내가 상대를 부르고, 묻고, 기억하고, 기다릴 때, 그 역시 나를 자신의 목록에 올릴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등록하는 그 교차점에서 비로소 관계는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나는 왜 등록되지 않았을까’가 아니라 ‘나는 누구를 등록하고 있는가’
우리가 느끼는 고립감의 상당 부분은 사실 ‘미등록 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타인의 선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타인의 삶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진심으로 접속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등록되지 않은 존재로 남는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다시 등록될 수 있는 가능성 위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갱신되는 목록이니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는다.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등록되기를 희망한다.
뭔가 맞지 않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