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드 연기1

참 특이한 형식의 영화.

by 정오의 햇빛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이런 이야기구나’ 하는 감각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사가 또렷하게 잡히는 영화라기보다는, 한 배우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느낌에 가까웠다. 저 세계는 저렇게 흘러가는구나, 저 사람들은 저런 방식으로 살아가는구나 하는 이해만이 남았다.


영화가 끝났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공하지 못해서 다행이다.

내가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했다면, 나는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볶이를 팔아 성공했다면 평생 떡볶이를 팔았을 것이고,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그 직장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지겨워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성공은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 같지만, 때로는 그 선택지 하나로 삶을 고정시켜버린다.


나는 특별히 뛰어난 재주도 없고, 어떤 기술로도 나를 묶어둘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우리는 늘 어떤 역할 속에 있다. 가족 속의 나, 직장 속의 나, 관계 속의 나. 내가 그 역할을 내려놓고 싶어도 주변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냥 나’로 존재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런데 나는 어딘가에 완전히 속하지 않은 채로 여기까지 왔다. 희미한 정체성, 어디에도 확실히 붙잡히지 않는 상태. 한때는 그것이 불안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내 삶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결격으로 느껴져서.


어느 역할로도 나를 완전히 묶어둘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자유라는 생각은 이전에도 많이 했다.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아쉬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는 말과 같다.

일생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연인 나’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글로 써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영화는 이야기를 주지 않았지만, 대신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나는 어떤 삶에도 묶이지 않은 채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젠 질문도 의미없다. 어차피 방향도 목적도 없는데 어디로 간들 가지못한들 무슨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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