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메소드연기를 하고 싶다.
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된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역할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역할들이 나에게 한 번도 ‘나’가 되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장인으로 살았고,
아내로 살았고,
엄마로 살았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빠지지 않았고, 무너지지도 않았으며 적당히는 해냈다.
남들이 사는 만큼은 했고 최소한의 선은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나는 한 번도 이게 나다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 놓였기 때문에 그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의 삶은 언제나 끝이 정해진 연기 같았다.
내가 선택한 역할도 아닌 것 같고 그닥 마음에 드는 역할도 아니고 행복한 드라마도 아니다.
주어진 배역이니까 하는 것 뿐.
그 마음으로 나는 늘 무대 위에 있었지만 마음은 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하고 싶지 않은 연기였지만 대충 할 수도 없었다.
애정은 없었지만 책임은 있었고 의미는 없었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 버텼고 그래서 더 많이 소모되었다.
이제 돌아보면 나는 한 번도 스스로 운전석에 앉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갑자기 던져진 핸들을 엉거주춤 부여잡고 목적지도 모른 채 이동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대부분의 역할에서 내려온 상태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노인이라는 아주 느슨한 이름 하나다.
이 역할도 내가 원해서 주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피할 수 없는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정해진 역할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하는 역할인 것 같다.
노인은 하나의 정답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정리하며 사는 노인도 있고 그저 유지하며 버티는 노인도 있고 여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노인도 있다.
그리고 어떤 노인은 자기 삶을 되짚으며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나는 아마 그 중간 어디쯤에 서게 될 것이다.
억지로 의미를 찾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싶지도 않다.
잘 살고 싶다는 욕망도 크지 않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 이게 나다라는 느낌을 느끼며 살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노인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주어진 배역을 해내려면.
일생 처음으로 메소드 연기를 하고 싶다.
영화속에서 주인공의 대사가 있다.
우물을 파다가 우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메소드연기라고 한 것 같다.
그건 어떤걸까?
글을 쓰다보니 평생 살아온 것 같은 노년의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적당히 한 발 빼고 적당히 한 발 걸치고 노인도 장년도 아닌 그 어디쯤의 느낌으로.
훌륭한 노인이 될 방법은 없다. 매력적인 노인이 될 가능성도 없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를 고민해야 한다.
노인 메소드연기를 해야 한다.
영화속의 주인공은 정말 메소드연기를 했다.
아무 이야기도 없이 생활을 보여주고 연기자의 삶과 어려움과 내적 갈등을 잘 보여주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메소드 연기란
연기를 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료로 써버리는 일이라고 하네.
사람들이 쓰는 글은 모두 메소드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