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2

영화와 세계관의 변화

by 정오의 햇빛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2시간 46분 동안 이어졌다.

나는 그 화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찍은 게 아니라, 없던 것들을 만들어낸 화면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어냈을까. 태양을 잡아먹는 생명체가 등장하고, 그 때문에 태양이 소멸하며 인류가 멸종한다.

영화는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태양이 사라진다는 설정이다.

줄거리는 이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영화가 나에게 남긴 흔적이다.


태양조차 사라질 수 있다면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건 SF 영화가 아니라 거의 철학적 충격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절대적인 것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경험이다.


영화이전에는 세상은 어느정도 안정적이고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였다면

영화이후에는 모든 건 무너질 수 있다. 생존조차 우연이다로 프레임이 바뀌었다.


영화는 망설임없이 태양이 사라진다에서 시작된다.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건강 시간 관계 내일아침

그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

그 전제가 흔들리는 순간, 내가 서 있던 자리도 함께 흔들렸다.


영화의 이야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하나의 장치였을 뿐이다.

내게 남은 것은 하나의 사실. 영원하다고 믿는 것들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질 수 있다.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의식의 깊은 어느곳에 자리잡고 잊혀진 생각.


영화가 끝나고 나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이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어떤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 같다.

사소한 순간에도, 이것이 계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 생각이 불안을 만드는지, 아니면 오히려 어떤 선명함을 만드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영화를 보기 전과 이후가 같지 않다는 것.


영화는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흑과 백처럼 선명하게,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만남이 있어야 하고 대화가 통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허무하게 끝났다.

세상에 그래야만하는게 무엇이 있을까 ? 태양도 잡아먹힐수 있다는데.

무슨 어린애같은 투정을 하고 있냔말이다.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만들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소통 수단을 찾아내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시도하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는 것.
영화 속 고슬링은 우주에서 홀로 죽은 자들을 보내고, 연료도 없이 던져진 상태에서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존재와 관계를 새로 만들어낸다.


영화는 SF의 옷을 입고 원시시대의 생존방식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의사에 반해 강제 마취당한채 우주공간에 던져져 홀로 남은 고슬링을 생각하면

나는 이제 외로울수가 없다.


이제 대화 상대는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나의 생존만을 위한 삶이 아닌 서로를 돌보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더 이상 외로울 일도, 누군가와 꼭 대화를 나눌 일도 아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당위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 영화가 길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고 고슬링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영화였다.

진행이 느리고 상영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꼈지만 그래서 깊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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