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드연기 3

내가 사랑했던 연기자 맹구 이창훈

by 정오의 햇빛

메서드 연기를 보고, 어두워진 골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며 떠오른 한 사람은 맹구, 이창훈이었다.

맹구는 정말 훌륭한 연기자였다. 아니, 연기자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바보 연기는 메소드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맹구를 떠올리면 웃음이 터진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맹구. 심형래보다도 더 웃겼던 맹구.

심형래가 순진한 바보였다면, 맹구는 교활한 바보였다.

어리석으면서도 교활하고, 앞뒤가 맞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마치 피카츄처럼, 단순한 듯 보이지만 여러 얼굴을 가진 캐릭터였다.


나는 맹구의 말을 들으며 감탄했다.
도무지 연결될 수 없는 서너 개의 개념을 붙들어 한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능력.

작가가 써주었겠지만 그걸 구현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느낌을 담아 그 말을 해야만 그 어수선함이 빛을 발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의 흉내를 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맹구는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더 이상 맹구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떠났다.


원래 그는 연극 배우였다.
어쩌다 티비에 끌려나와 맹구라는 캐릭터로 너무 큰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는 결국 그를 그 역할에

가둬버렸다.


지금 <봉숭아 학당>을 다시 보아도 처음 보는 것 처럼 여전히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웃겼던 코미디언은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요즘의 SNL은 다르다.
웃기지만, 어딘가 코미디가 아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의 배우들—이세윤, 김민교, 정상훈—
이 사람들도 언젠가 자신의 지금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맹구의 인기는 그를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그는 얼마나 고뇌했을까.

오늘 본 이동휘의 연기도 그랬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현실 같았다.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냥 드러내는 것 같았다.

어쩜 그 모습은 거의 모든 배우들의 이야기 일 수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그 안에서 배우의 고민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캐릭터에 갇혀 사라진 배우들.
그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멈춘다.

나도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어떤 캐릭터에 갇혀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건 맹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배우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 허탈하다.


메소드 연기라는 제목의 영화는 결국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갇혀 죽은 남자. 엄마로만 살다 끝나버린 여자

사랑받지 못하는 캐릭터로 살아가느라, 여전히 사랑받지 못함을 확인하는 나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역할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살아간다.


어쩌면

삶 자체가 하나의 메서드 연기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연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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