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되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노력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았다.
하나는 일본 영화 《폭탄》, 다른 하나는 프로젝트: 헤일 메리였다.
두 영화 모두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가졌지만, 관객으로서 경험하는 몰입과 감정의 결은 완전히 달랐다.
헤일 메리는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서로 협력하며 세상을 지키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반짝이는 우주와 별빛 속에서, 위험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반면 폭탄은 취조실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폭발 장면조차 단편적이고 파편처럼 느껴져 몰입이 어렵다. 느린 진행 속에서 졸음을 피할 수 없고, 졸다가 봐도 정지화면인듯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도 극명하게 다르다.
헤일 메리: 외부의 거대한 생명체 → 인간과 비인간이 협력하여 극복하는 과정이고
폭탄: 내부의 소외되고 돌봄받지 못한 존재 → 연쇄적 폭발로 현실 세계 위협하는 내용이다.
폭탄 속 사건의 발단은 사소하고 일상적이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지자, 감정이 자극되고 술을 사러 가야 하지만 돈이 없다.
자판기를 부수고 경찰에 체포된다. 체포되지 않았다면 사건의 연쇄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행동은 계획된 체포, 사건을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일어난 사건은 한 사람의 붕괴가 연쇄적 붕괴를 낳는 과정이다.
존경받는 경찰의 변태적인 행동으로 인한 사회적 몰락과 죽음
아버지를 잃은 아들과 아내의 허물어지는 삶.
왜곡된 복수심과 사회부적응자들의 결집으로 생기는 복수에너지
남은 사람들의 상처와 상황 속에서 얽히며 사건은 합동적 구조를 띠게 된다.
주인공의 이용당했고, 최면 당해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진술도, 단순히 책임 회피가 아니라 존재 그대로의 서사일 수 있다.
사회가 제공하는 안전망은 아무리 넓고 깊어도, 개인의 모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폭탄이 터지면 주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피흘리며 쓰러진다.
그 장면은 개인 삶의 붕괴와 다르지 않다.
사건의 방아쇠를 당긴 이는 누구일까.
경찰도 노숙자도 아닌, 정보를 팔아넘기고 기사화한 정신과 의사와 보도매체
전국민 공론화 압박과, 이를 견디지 못한 경찰의 자살
결국 사건은 위험해 보이는 사회부적응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며, 매스컴과
우리 모두 폭발을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된다.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고 붕괴시키는 단초는 위험해보이는 사회부적응자들이 아닌
너무나 정상적이고 교양있고 은밀한 부분을 담당하는 고기능전문가와 매스컴윤리의
붕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상을 지키는 최소한의 힘은 단순하다.
서로를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꼭 사랑이나 관심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는 없다. 단순히 존재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선이 중요하다.
오늘 누구라도 따뜻하고 포근하게 바라보는 하루를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