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라이언 고슬링의 따뜻함

by 정오의 햇빛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어이가 없었다.

“관계가 없다, 만남이 없다, 대화할 사람이 없다”라고 징징대던 내가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주 한가운데 혼자 떨어진 사람에게도 관계는 생기고, 만남은 일어난다.
그런데 나는, 인간의 바다 속에서 “관계가 없다”고, “만남이 없다”고, “대화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었을까.


사실, 원하는 것과 연결되면 된다.
대화를 나누면 되고, 만나면 되고, 그게 어렵다면 돌멩이와도 하고, 나무와도 하고, 애완동물과도 하고, 냉장고와도 하면 된다.
인터넷도 있고, 브런치도 있고, 당근도 있고, 이미 지구 한복판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관계가 없다, 만남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말 개짖는 소리다.


나는 혼자여도 충분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누군가를 만나겠다는 마음은 사실 “관계가 없다”를 증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누군가를 만나야 했던 거다.
하지만, 세상에는 무궁무진한 관계의 가능성이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필요성은 사라졌다.
정말 나의 투정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이 영화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거 좀 봐, 이것을 보고 그런 말을 해.”
엄청나게 확장된 이야기를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얼마나 엄살을 피우며 징징거렸는지 깨달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브런치에 글을 한 줄 올리는 것만으로 이미 접촉을 하고 있는 거다.

누군가와 실질적인 대화를 주고 받든, 만나서 밥을 먹든, 그와 관계없이 글 한 줄만으로도 관계는 일어난다.
굳이 하하호호 웃는 관계가 아니어도 괜찮다.
교회에서 같이 훌라춤을 추고, 예배를 듣든 말든,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풍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노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관계가 일어난다는 것을.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겨우 이제 나도 알았다.


참나 내가 하는 말들이 어이가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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