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생크림 케잌과 하얀 머리의 노인이 있는 풍경
이마트 빵 코너 앞에 서 있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온다. 단순히 “맛있겠다”는 감각이 아니다.
폭신한 카스텔라, 고소한 소세지빵, 수저로 떠먹는 생크림 케이크의 부드러움.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분명한 쾌락앞에서 멈칫한다. 어딘가 어색하다.
그 쾌락이 너무 순수하기 때문이다. 아무 의미 없이, 오로지 맛과 질감만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 그리고 그 순수한 쾌락을 혼자서 누린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다. 마치 함께해야 할 어떤 것을 혼자 하는 자위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빵을 집어 들지 못하고 오래오래 바라본다.
다행히 침이 흐르지는 않는다. 두 번쯤 왕복하며 모든 빵을 눈으로 먹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함께할 때 더 자연스럽다. 술도 그렇고, 담배도 그렇다.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함께하면 괜찮아진다. 아니 그 해로움조차 의미가 된다.
“너와 함께”라는 조건이 붙는 순간, 그 행위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관계가 된다.
혼자 먹는 빵은 맛은 배는 채우지만 의미로 남지 않는다.
고약한 것은 배가 채워지는 것과 비례해 후회의 불쾌감도 차오른다.
혼자서도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쾌락은 무엇일까.
운동과 글쓰기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즐거움이라기 보다는 복구에 가깝다. 흩어진 나를 모으는 일.
나는 혼자 있을 때 나를 붙잡아 줄 중심이 없다.
오랜시간을 바깥으로만 시선을 두고 중심을 남에게 두고 살아서 내 안으로 거두어
오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사람을 찾고 자극을 찾고 무언가를 붙잡으려 한다.
혼자 있어도 괜찮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잘 보내는 일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어색함을 견디고 쓸쓸함을 견디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
그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낯설지 않아지겠지.
빵 코너앞에서 느꼈던 그 어색함은 꽤 정확한 감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의미 없는 쾌락”에 대한 나의 거리감이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 소비하는 즐거움은 오래 남지 않는다는 것을.
조그만 투명 용기에 담겨있는 떠먹는 생크림케잌.
위에 딸기가 얹혀져 있고 생크림 사이사이 빵이 들어있는 케잌.
그 작은 케잌도 혼자 먹기엔 많아 보인다.
느낄 새 없이 녹아들어갈 생크림 케잌을 혼자 다 먹고 그 느끼함에 부대낄 속을 생각하면
감히 손 내밀 수 없다.
누굴 붙잡아서 언제 저걸 한번 먹어보나.
나는 아직도 혼자서는 그걸 먹어낼 자신이 없다.
빵집앞의 서성이는 초라한 하얀 머리의 노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나만을 위한 쾌락에 다가가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