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헛바퀴만 돌린 것은 아니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만 반복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독서를 의심했다.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변할까?
많은 책을 읽을 능력도 시간도 없는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때로는 허영처럼 느껴졌다.
특히 니체 같은 철학를 읽으려면 그의 사고 수준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수준에 있다면 굳이 읽을 필요도 없다. 읽어도 이해할 수 없다면 역시 읽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보다 더 단순했다. 나는 애초에 읽을 수가 없었다.
읽을 수 없으면 읽을수가 없는 것이다.
억지로 읽어도 글씨만 눈에 들어온다. 글씨를 읽는다고 문장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독서는 나에게 삶을 바꾸는 도구가 아니라 의미없는 지식의 축적처럼 보였다.
물론 자꾸 읽으면 언젠가는 통찰이 올지도 모른다.
언제올지 모르는.
어렸을 때 나는 이미 그것을 느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
그 이후로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은 허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읽었다”라고 말하기 위한 독서가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어려운 책은 밀어두고 흥미위주의 소설만 읽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건 깊이가 아니라 숫자일 뿐이라고.
글은 속일 수 없다고 믿었다.
글은 대화보다 더 직관적으로 그 사람의 사고를 드러낸다.
독서는 내용 이해하지 못해 포기 했고 수학도 역시 그러했다.
도무지 따라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공식을 외워서 숫자를 대입하고 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나는 공식도 외우지 못했고 더 이상한 일은 그 공식을 이해하려고 했다.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해하려면 피타고라스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까?
그렇게 수학은 멀졌고 과학도 영어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와서 보면 단순하다.
나는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읽지 않기 위한 이유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읽는 고통을 피하기 위한 핑계. 공부하기 싫은 어린아이의 논리.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 집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대신 한가지는 계속했다.
머리를 쉬지 않고 굴리는 일
같은 회로를 수십만번 돌리는데 다른 답이 나올리 없다.
그 결과 고착되고 편집적이 되고 남의 말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꽉닫힌 머리가
만들어졌다. 결국 망상에 가까운 상태가 망상가가 되었던 것 같다.
글도 쓸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볼 것도 아니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뭣 때문에 긴 시간을 들여 글을 써야할까.
그 생각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탁월해 보였다.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일을 했다.
시간을 돈으로 만드는 일. 싸구려 노동에 몸을 던지고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는 일.
읽지도 쓰지도 않은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한 사고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붙잡고 있을 가치도 없는 생각을 결론이 날때까지 돌리는 일.
아 어리석고 미련한 나.
아직도 책을 읽지 못한다.
그런데 글은 쓰고 있다.
이제는 글 쓸 시간이 부족해서 책을 읽을 수 없단 말이지?
참나...
글을 다 쓰고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올라오는 생각하나.
나는 단순히 게을렀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였까
어쩌면 나는 아주 불안한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