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
나는 오늘 아무 이유 없이 밖으로 나왔다.
나와야 할 이유가 없어서 침대에 누워 아물거리는 눈으로 핸드폰만 본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서성거리는 날들이 이어지는 게 고통스러웠다.
나가야 할 이유는 언제 생길지 모른다.
그때를 기다리는 대기의 시간에 나는 사라진다.
마치 아직 불려지지 않은 영혼처럼 놓여 있다.
부름과 이유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
나가는 데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일은 저절로 일어나고 사라진다.
존재의 의미를 이유나 가치, 목적에서 찾는 오랜 방식이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가치함과 존재의 의미없음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견디고 난 후에야 존재는 판단의 잣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존재를 평가하고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유 없이 입력된 가치와 정보로 살아온 대가는 누가 치러야 하는가.
나는 왜 이유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느끼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정말로 없는 것과 같은 것일까.
가만히 있어도 존재하는 방식은 배워본 적이 없다.
항상 무엇이 되어야 했고 무엇을 해야 했고 무언가로 설명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이유 없이 나오는 일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그동안의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도 설명되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버티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존재에 대한 이해 없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주변은 역할을 요구한 적은 없지만 존재를 허락한 적도 없었다.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놓여 있던 존재였던 나.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모른 채 어떤 상태도 자연스럽지 않은 어색한 위치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들어간 것도 나간 것도 아닌 걸쳐진 상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고 거부된 것도 아닌 그 이전의 상태.
어쩌면 인식되기 이전이었거나 인식 자체가 거부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이제야 이 이야기가 다루어져야 할 때인가 보다.
삶의 거의 모든 단계가 지나간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유는 뭘까.
조금 어이없다.
아무리 오래 덮어두어도 결국은 열어젖혀야만 하는 이야기.
그건 내 심연에 가장 바닥에 깔려 있는 마지막 장면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