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독자의 말로

뽐뿌질을 멈추면 아무 것도 올라오지 않는다.

by 정오의 햇빛

어떤 사람이 가족과 함께 살고, 친구도 많고, 날마다 할 일도 있고, 돈도 충분하다.
그런 삶이라면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까?

겉으로 보면 그 삶은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내면은 언제나 외부 조건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공허함이나 쓸쓸함이라는 감정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일까.

어쩌면 그 감정들은 실체가 아니라 환경과 나 사이에서 생겨나는 해석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더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더 풍요로워지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상태가 아무렇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처연함도, 쓸쓸함도, 외로움도 그저 아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어지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예전에는 준비물을 챙겨서 집을 벗어났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에는 괜찮다. 무언가를 먹고 있는 동안에도 괜찮다.

그 순간에는 지금의 이 감정을 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행동들은 목적이 아니다. 단지 감정을 지우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선택이 후회를 남긴다.


그렇다면 이 내면의 구멍은 언제까지 올라오는 걸까.

이 감정이 다 올라오면 정말 아무 느낌 없는 상태가 되는 걸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흐름에 가깝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덜 붙잡히게 되는 것에 가깝다.


어떤 일이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 일을 평생 반복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것만 계속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맛이 없고, 원하지 않는 맛을 경험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다른 상태를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강렬한 행복이 아니라 약간의 즐거움 약간의 설렘 약간의 기대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통 이런 감정들은 외적인 조건에 많이 의존한다.

사람, 관계, 사건, 돈.


그래서 질문이 생긴다.

외부 조건 없이도 혼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 방식은 거창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작은 것들이다.

사과 한 입을 천천히 씹으며 느끼는 감각

음악 한 곡을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시간

5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보는 일

짧은 글 한 줄을 써보고 ‘끝냈다’고 느끼는 순간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작은 보상이 되고 그 보상이 쌓여 내 안에서 아주 미묘한 즐거움을 만든다.

그런데 그 사소한 행동에 머무는 것이 아직 안된다.

일생 아드레날린에 중독된 몸이 지금 가만히 있음을 견디기는 마약중독자의 금단증세만큼 쉽지 않다.

이 공허와 무료함과 지루함은 당연한 결과이다.


더 한심한 것은 작은 의미를 느끼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음이다.

강아지를 돌보는 일도 화초를 가꾸는 일도 생각만으로 충분하다.

나의 공허를 달래기 위해 뭔가를 더 수발하고 싶지도 않다.


돈은 강력한 동기다.
결과가 분명하고, 손에 잡히고, 즉각적이다. 그러나 이제 돈도 동기가 되지 못한다.

내적인 감각들은 느리고, 모호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약하다.

하지만 약하다는 것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어떤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공허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도 아니고 감정이 완전히 없는 상태도 아니다.

그저 감정이 올라오든 말든 그 위에 가볍게 떠 있을 수 있는 상태,

아무렇지 않은 순간이 가끔씩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상태.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은 상태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고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 사이에 작은 감각과 작은 경험을 조용히 쌓아가는 것.


어쩌면 이미 충분히 괜찮은 상태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걸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왜?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