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싸워본 적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당연히 화해를 해본 적도 없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본 적도 없고, 용서를 하거나 용서를
받아본 경험도 없다.
싸우지 않았다는 건 무엇일까.
관계가 없어서 싸울 일이 없었다.
부딪힐 일도, 상처를 주고받을 일도 없었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누구와도 닿아본 적이 없다.
불편함과 갈등, 감정의 충돌을 미리 차단해왔다.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관계를 접어버렸다.
싸움이 없다는 건 평화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싸워서 해결될 것 같지 않은데 왜 싸우며 시달려야 하는가.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누구도 설득하지 않았고, 나 역시 설득당하지 않았다.
서로의 말은 서로에게 닿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서로를 잃을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까워진 관계는 없었다.
가졌던 적도, 잃어본 적도 없다.
이거 뭘 의미하는가.
하다못해 사춘기도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세계와 부딪힌 적이 없다면 나의 세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가까워질 만큼 기대하지 않았고 부딪힐 만큼 요구하지 않았던 관계들.
나에겐 타인과 부딪혀 만들어진 기억이 없다.
이제는 부딪힐 타인도 없다.
서로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들어갈 일도 없다.
충돌은 내가 나를 얼마나 드러내는가에서 시작된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살아왔지만 안에서는 끊임없이 부딪혀왔다.
다만 그 싸움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깨질 관계도 없고 나를 접어야 할 관계도 없다.
가장 편안한 지점에 와 있다. 그리고 가장 고독한 지점에 와 있다.
여기까지 쓰니까 알 것 같다.
나의 이혼은 필연이었음을. ㅋㅋㅋ 관계없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는 없지.
내가 쓴 글은 나의 이야기일뿐이다.
나는 내가 쓴 글과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