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뇌의 상관관계3

어제와 다른 오늘.

by 정오의 햇빛

평소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던져진 시간과 그 시간을 힘겹게 밀고 가는 내가 있었다.


말을 붙잡으려 애쓰며 지금 이 순간 생각을 기록하려 했지만, 말은 어디론가 스며들었다.

혀끝에 남은 느낌은 분명했지만, 단어로 이어붙이려는 순간 순식간에 흩어져버려 뒤를 잇지 못한다.
느낌은 살아 있는데, 말은 따라오지 않는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는 분명한데 말해보지 않은 것이어서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사이에 느낌마저

사라져버렸다.


답답해할 수도 없다. 무엇을 잊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니까.

억지로 만들어보면 이런 이야기다.


예전에는 내가 시간을 끌고 간다고 느꼈다. 때로는 시간에 끌려다니곤 했다.

마음이 늘 시간을 앞질러 달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은 나와 미세하게 어긋나있었다.

오늘은 다르다. 나는 시간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시간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나 사이에 간격 없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나는 언제나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이제서야 온전히 느낀 것 같다.

시간은 나를 밀어붙인 적도, 끌고 간 적도 없다. 저 스스로 지나갈 뿐이었는데,
나는 스스로 시간에 깔리고 매이며 허덕이며 살아왔다.

지금은 시간에서 놓여났지만, 여전히 과거와 같은 시간관념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건 위기 속에서 살아가던 습관의 잔재다.

출근에 늦을까, 마감에 늦을까, 뭔가 어긋날까 두근거리던 날들의 기억이 지금도

그대로 몸에 남아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어떤 감정이 내 안에 젖어 있었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무겁게 하루를 끌고 가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내 안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끌고 다니거나 매달릴 것도 없는 홀가분한 상태다.


애써 “좋다”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다면 좋거나 싫을 수 도 없는 일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이미 다른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감정은 이름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금의 느낌은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미역과 다시마가 자라는 물풀 숲 사이로, 나는 스르르 미끄러져 간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 그 안에 존재한다.

예전엔 그 물풀들을 피하며 움츠러 들었다.

그것들은 그저 흔들리고 있었을 뿐이고 나역시 그 흐름속에 있었을 것이다.

의미 없는 몸사림과 도피였을 뿐이다.


오늘 아침의 잔잔함은 감정이 올라오기 전의 상태다.

어쩌면 감정이 아니라 기억일지도 모른다. 기억이 감정을 만들어내고

현실처럼 느끼게 했을 지도 모른다.


몸은 깨어났지만, 생각은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자동으로 떠오르던 생각들 ‘혼자다’, ‘쓸쓸하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 같은 생각들.

이제는 내가 떠올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의 느낌을 붙잡거나 정의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오늘 하루를 이 상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된다.

이건 처음 하는 경험 같다.


생각이 저절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
자동으로 올라오던 생각이 멈춘 것을 처음으로 보고 있다.

왜 이런 상태가 온 걸까?

어떻게 해서 왔지? 내가 무엇을 했을까?


1.감정을 꺼내 글로 썼다.

구차하고 너절한 생각들—공허하다, 허무하다, 혼자다, 쓸쓸하다.

이런 생각들은 비밀이었다. 비밀을 유지하려면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

새나가지 않도록.

그런데 글을 쓴 이상, 이제 비밀도, 붙잡을 필요도 없다.

2. 내 안의 감정을 붙잡는 힘이 사라졌다. 비밀이 공표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초라한 삶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3.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테니스코트가 공사를 시작해서 운동을 쉬고 있다.

4.몸이 편안해졌다.

5.느낌에 이름을 붙이고 보관하던 습관 대신, 이제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 한다.

이미 글로 빠져나간 생각들—쓸쓸하네, 허무하네, 고독하네, 의미없네—


아무리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해도 감정에서 생각에서 자유로와지지 못했는데...

참나...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전환의 순간은 이렇게 갑작스럽다.


지금은 오후 3시. 거대한 호수에 떠있는 눈이 아직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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