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현실의 차이

늙어가는 중. 아니 이미 늙었는데 ...

by 정오의 햇빛

전망 좋은 방이나 《하워즈 앤드》 속 여자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니고, 파티와 사교 모임에 참석하며, 테니스를 치고, 피크닉을 즐기며 서로 스치듯 만난다. 그런 느슨한 일상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와 사랑이 부딪치고, 관계가 싹튼다.


현실에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사람들에게 이런 장면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반복되는 일과와 일정 속에서는 정서적인 삶을 선택할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감성과 교감은, 적당한 조건과 환경이 갖춰져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감정은 남는 시간에서 생긴다. 머무는 시간, 반복되는 만남, 쓸모없어 보이는 대화가 오가는 시간. 그러나 현실의 관계는 효율적이고 목적 중심적이어서, 감정이 쌓일 틈이 없다.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처럼, 일만 있는 삶은 공허하지만 편안할 수도 있다.


내 삶의 환경에서는 누구와도 깊이 부딪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흘러가고, 머무르지 않는다. 느긋하게 있는 사람들은 공원이나 노인 놀이터에서 장기나 바둑, 백 원짜리 화투를 즐기지만, 나는 그곳에도 들어갈 수 없다.


문자매와 함께 교회에 갔지만, 두 시간의 예배는 졸음과 공허로 지나갔다. 들리고 싶은 얘기도, 설득될 얘기도 없었다. 나는 신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그저 안면을 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조차 현실 속에서는 어렵다.


운동, 글쓰기, 공부, 봉사, 교회, 명상, 대화…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여전히 연결이나 관계는 생기지 않았다. 목요일 영화 모임에 꾸준히 나가지만, 영화 보는 것에 집중하느라 사람과 관계를 맺을 틈이 없다. 녹색당 모임도 한 번밖에 가보지 못했다. 이제는 관계가 생기기를 기대할 필요조차 없다는 현실 인식이 자리한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 더 이어지는 순간, 또 한 번 마주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반복 속에서, 관계를 기대하지 않는 삶을 시작해야 한다. 나이든 사람이 혼자 사는 삶의 보편적인 모습, 단순하고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마모되는 톱니바퀴 같은 삶을 살아간다.


김밥집 알바는 나에게 중요하고 강제성이 있지만, 내가 만든 자발적 구조는 허술하다. ‘열 시에 나가야지’ 했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열한 시, 열두 시가 되고,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넘어가곤 한다. 타인과 맺은 약속은 구조를 만들지만, 스스로 만든 구조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정말 내가 늙고 있다는 느낌이 크게 든다. 뭔가를 하려는 것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다. 예전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뛰쳐나갔지만, 이제는 뛰쳐나갈 힘조차 없다.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지금의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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