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장춘자 여사의 이야기
누룩은 뭘 말하려고 하는 영화인지 모르는 채 끝났다.
영화감독은 뭔가 열심히 표현했을텐데 나는 찾아 내지 못했다.
영화속 거지들이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어 먹고 탈이 나서 토하는 장면이 있었다.
막걸리 공장 딸 아이는 발효가 완료되지 않은 걸 먹으면 탈이 난다고 말해준다.
발효가 진행중인 막걸리는 독성물질을 생성하고 있는 중인것 같다.
발효가 끝나면 독성물질은 알콜로 변하는 건가?
막걸리가 발효되어야 먹을 수 있듯 말이나 생각도 발효시켜야 할 것 같다.
나는 말의 타이밍을 본다.
그리고 타이밍이 어긋나는 순간, 마음을 추측한다.
장춘자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삼십 분 남짓 이어진 이야기 속에서 제주 4.3때 이야기, 어린 자녀들과 교회에 갔던 이야기,
무거운 물을 싸들고 육지 까지 교회행사에 갔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중 하나가 남았다.
어린 아이가 무거운 물을 들고 가는데 같이 가는 교인들이 물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무거운 짐을 들어주지는 않고, 물만 계속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물을 주는 마음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거절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그대로 꺼내는 것이 이상했다.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는 이야기 같았다.
수십년이 지났으니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잊을 수도 있을텐데 얼마나 마음에 남았던 걸까.
그때는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족히 오십년전의 이야기일텐데 그대로 나오는 게 신기했다.
테이블위에는 깍아놓은 참외가 통에 담겨 있었다.
손님이 온다는 걸 알고 준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먹기 위해 담아 놓은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권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야 “참외 있으니까 먹으라”는 말을 했다.
그것도 이상했다.
대접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처음에 꺼냈을 것이다.
아니면 중간쯤이라도. 왜 끝에 가서야 말을 했을까.
나는 생각했다.
애초에 대접하려는 마음이 크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마음은 있었지만 그걸 바로 꺼내지 못하는 상태였을까.
나는 자꾸 타이밍으로 마음을 읽는다.
왜 그때 말했을까
왜 그때 말하지 않았을까왜 지금까지 그대로일까
그리고 그 틈에서 “이상하다”는 감각이 생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상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붙인 속도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 빨리 결론을 낸다.
처음에 권하지 않았다 → 마음이 없다
옛날 이야기를 그대로 한다 → 정리되지 않았다
이렇게 바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말은 늦게 나오기도 한다.
마음은 있어도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오래된 감정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나는 그걸 기다리지 않는다.
보이는 순간에 해석을 붙인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이건 마음이 없는 걸까,
아니면 방식이 어색한 걸까.
이건 끝난 이야기일까,
아니면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상태일까.
말도 발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익지 않은 말은 거칠고, 그대로 나오면 상대를 상하게 한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해석도 발효가 필요한 것 같다.
너무 빨리 붙인 해석은 정확할 수도 있지만, 거칠다.
나는 말이 아니라 머물러 해석을 먼저 발효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글은 말을 발효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