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지울 수 없는 흔적

5월 어느 날......

by 좋은아침

‘달그락달그락, 쉬익 쉬익’ 여러 소리가 친정 부엌에서 흘러나온다. 벽에 붙어 있는 시간을 확인하니 5시가 될 듯 말 듯한 시간이다. 내 옆에 아들, 큰언니, 조카들이 자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부엌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엄마란 걸 알기에 벗어놓았던 옷을 걸쳐 입고 부엌에 갔다.


“엄마, 피곤하지 않아. 좀 더 자지.”


“그냥 잠이 깨대. 넌 더 자지 뭐 하러 나와.”


“나야 뭐, 원래 잠 없잖아. 뭐 도와줄까?”


“밥 안쳤으니 할 거 없어. 근데 땅이 안 말라서 고구마를 심을 수 있나 모르겠네.”


“아빠는?”


“새벽부터 고구마 밭 로터리 처야해서 거기 갔지. 땅이 질어서 잘 될는지 모르겠네.”


“아침부터 아빠가 고생이시네.”


매년 돌아오는 행사처럼 5월 중순이 되면 고구마를 심으러 친정에 온다. 금요일 저녁 아들과 함께 홍성역에 가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언니와 조카를 태워 친정집에는 밤에야 도착했다. 다들 저녁을 늦게 먹고 자서인지 밖에서 소리가 나도 곤히 잔다.


엄마, 아빠도 피곤하실 텐데. 늘 그렇듯 일찍 일어나신다. 게으름을 좀 피우셔도 말릴 사람 없는데 부모님은 늘 제철에 해야 하는 일을 끝내기 위해서 몸을 바삐 움직이신다. 내가 나이 먹는 속도보다 빨리 나이 드시는 부모님을 보면 괜스레 화가 난다.


아빠는 작년에 허리를 다치셔서 일 년에 몇 번씩은 정기적으로 세브란스병원에 다니신다. 몸이 그 정도인데도 아빠는 약과 주사를 맞으며 논농사와 밭농사를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엄마도 아빠에 지지 않으신다. 몇 해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아빠랑 짝을 맞추어 심하게 일하신다.


안다. 부지런한 부모님이 있으시기에 우리 가족이 밥 안 굶고, 잘 살았다는 사실을 당연히 안다. 학창 시절에 우리 남매는 방학과 주말에 쉬어 본 적이 없다. 농사짓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부족한 일손을 도와드려야만 했다.


같은 시골이라고 해도 농사일을 절대로 시키지 않는 집들을 보면 엄마, 아빠가 계모, 계부가 아닐까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강압적으로 일을 시키지는 않으셨다. 다만 우리가 돕지 않으면 엄마, 아빠의 귀가 시간이 늦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도 운동장, 놀이터 대신 밭과 논에 들락거리는 날이 많았다. 오죽이야 친구들은 겨울이 좋은 이유를 눈이 와서라고 했지만, 우리 남매들은 겨울에는 농사일을 하지 않아서 겨울을 유독 좋아했다.


요즘은 마음으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농사일을 나이 든 부모님이 생각나서 기꺼이 가서 하게 된다. 다만 농사를 줄인다고 하시지만 두 분이 하시기에 애를 써야 끝나는 일을 보고 있으면 부모님께 잔소리를 하게 된다.

자식들의 잔소리에 그나마 조금은 반응을 하시지만 여전히 우리 눈에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넓은 밭과 논을 힘 안 들이고 재미나게 하시던 부모님을 알기에 우리가 보는 두 분의 노쇠는 부모님 안에 응어리로 남을 것이다.


풀 수 없는 응어리로 남더라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부모님이기에 우리의 잔소리는 친정집에 드나들 때마다 더 심해질 뿐이다. 가끔 엄마, 아빠가 우리의 잔소리를 부모님에 대한 애정의 크기로 받아들이는 착각마저 든다. 계속 우리들의 아우성이 듣고 싶어서 일을 더 많이 줄이지 못하시는 건가?


엄마의 예상처럼 토요일에 고구마를 심을 수 없게 되었다. 못 심는다고 해서 농사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구마 농사는 부가적인 일이고 부모님의 주된 수입원은 고추다. 터널식으로 심은 고추가 어느 정도 자라면 방아다리라고 해서 고추가 너무 웃자라지 않도록 뿌리와 가까운 줄기를 2~3개, 많게는 4~5개 정도를 따 줘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고추가 더 맛있고 모양도 보기 좋게 자란다고 한다.


해가 나야 젖은 땅이 마르기에 해가 간절했지만, 그늘 한 점 없는 긴 고추밭에서 일하니 뜨거운 햇살이 등을 내리꽂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나이 들어 기미가 올라와서 온몸을 가리고 일을 해서 인지 땀이 샘솟는 것 역시 막을 도리가 없다.


엄마의 지시대로 열심히 속도를 내어 일을 하지만 엄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엄마의 손놀림을 흉내 내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봤자 애만 먹을 뿐이다. 엄마만큼 하려고 욕심을 내면 고스란히 다음에는 더 뒤처지고 만다. 이렇듯 우리 엄마는 일을 정말 잘하신다.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싫어해서, 어느 집으로 품앗이를 가도 엄마 밭처럼 열심히 하신다.


그런 엄마의 피가 나에게도 흐른다. 혼신을 다하는 엄마의 짙은 피가 나의 묽은 피에도 섞여있다. 어딜 가나 못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뭔가를 해도 게으름 피우기를 거부한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 일에도 게으름을 피우면 뒷목이 따끔거리는 환영까지 스스로 만들어낸다.


살아보니 부지런함이 중요하기는 하나 가끔은 답답증을 만들어낸다.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을 발휘하고 남들 쉴 때 같이 쉬면 되는데 몸에 부지런함이 각인되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하고 나야 성이 차서 옆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엄마 때문에 속상한 면도 있지만 엄마 덕분에 덕 보는 것도 많다.


엄마는 손맛이 좋으시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맛본 나의 음식에 대한 눈썰미는 밥만 할 줄 알고 결혼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엄마의 불규칙적인 레시피처럼 대충, 대강 얼마를 넣으면 맛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이야 우리 신랑도 요리 못한다고 걱정했는데 실력을 감추고 있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엄마는 요리 맛도 맛이지만 속도가 빠르시다. 남들은 두세 시간을 끝내는 것도 한 시간이면 하실 정도로 손이 빠르시다. 그 점이 또 닮아 있다. 요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오래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처럼 나 역시 휘리릭 요리를 완성하는 것을 고집한다. 가끔은 변태스럽지만 타이머를 맞추고 그 시간 안에 요리를 끝내면 그토록 좋을 수 없다.


엄마의 손맛과 속도가 요즘 들어 계속 변하고 있다. 여전히 음식은 맛이 있지만 가끔 너무 달짝지근하거나, 너무 짜서 혀가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여러 음식을 한 번에 끝내셨는데 올해 들어서는 힘에 부치셔서 많이 못하신다. 엄마의 부엌에도 엄마의 노쇠가 묻어나기 시작한다. 친정에 갈 때마다 아무리 지워보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엄마의 나이 듦이 붙어 있는 부엌을 박박 문지르면 어느새 그것은 엄마의 방, 옷으로 옮겨간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싫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부모님 곁에 켜켜이 쌓여가는 그것만 살짝 지워드리고 싶다.

나는 짧고 굵게 살고 싶다. 부모님이 안다면 경을 치겠지만 말이다. 이런 나도 부모님에 있어서는 노화를 질질 뒤로 잡아당겨서라도 오래 사시게 만들고 싶다. 내 몸 안에 남은 엄마의 흔적을 들여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엄마가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엄마의 피가 내 안에 흐르더라도 눈으로 부모님을 따라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느린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듯 계속 느려져도 좋으니 부모님이 오랫동안 내 삶에 우리 남매들의 삶에 흔적을 남겨주시길 기도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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