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이 풍경에 취한 신부님은 성당에서 테너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 나와의 순간을 축하하는 의미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하셨다. 노래를 듣고자 하는 관객의 허락도 있기 전 신부님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셨다. 여러 가곡을 뽑아내셨지만, 기억나는 곡은 ‘오 솔레미오’ 하나이다. 가곡을 부르는 신부님 옆에서 박수를 치면 환호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서 본 적은 있어서 ‘앙코르’도 수차례 외쳐댔다.
멈추었던 비는 다시 조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 없이 잔잔한 비를 배경 삼아 노래하시는 신부님.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내내 낯선 곳을 가고 낯선 이를 마주쳐야 해서 긴장한 나의 의식들. 나의 팽팽했던 어떤 것들이 ‘툭툭’ 소리를 내며 느슨해졌다.
노래를 끝낸 신부님은 진주에 사는 또 다른 딸에게 연락을 하셨다. 나를 소개하길 멋진 딸을 만났는데 함께 진주성을 돌아보자는 것이었다. 어느덧 나는 지친 사람에서 멋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우연히 만나 나와 신부님, 신부님에 이끌려 처음 보는 나를 맞이한 진주의 또 다른 딸. 우리 셋은 진주성을 한 바퀴 돌고, 진주성 앞에 있는 장어 집에 들어가 복분자주를 기울이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이 날 처음 신부님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차갑고 낯설기만 했던 나의 여행은 어느덧 결이 바뀌어 버렸다. 굳이 표현하자면 온도가 달라진 것이다.
여행을 끝낸 이후로 종종 신부님과 연락을 했다. 지병으로 돌아가시기 전, 신부님과 신부님의 절친한 수도원장님과 셋이서 어울리지 않은 조합으로 거제도를 함께 여행을 했다. 신부님을 만난 이후로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하거나 낯선 이에게 조금은 따뜻해질 수 있는 마음은 가지게 되었다.
지친 내 맘을 달래고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떠난 여행에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아낌없는 마음으로 위로를 받았다. 한순간에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행을 떠나기 전과 나는 조금은 달라져버렸다. 여행 전의 늘 불안한 마음을 키우던 나를 조금은 놓아주게 되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했던 강한 척하던 나. 지금도 여전히 약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내 감정에 척을 가져다 붙인다. 그래도 지금은 힘들면 사람에 기댈 줄 안다. 가끔은 욕심을 부려 사람으로 상처 받은 내 마음이 또 다른 사람으로 아물길 바란다. 그래도 내 마음 한편에 누군가가 힘을 얻고, 기댈 수 있는 작지만 따스한 방도 마련해 두었다. 10년이 넘은 여행에서 신부님의 마음의 방을 방문했던 기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