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다친 상처가 꼬맬정도는 아닌데 집에서 치료하기에는 버거워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 드디어 오늘이 병원에 가는 마지막 날이다. 하필 다친 부위가 중지와 약지 사이여서 거즈를 고정시키기 위해서 오른손 한쪽을 붕대로 감아야 했다.
아들은 날이 더워서 조금이나마 붕대에 갇힌 손가락에 시원한 바람이라도 넣어주기 위해 애써 감아놓은 붕대를 이리저리 헤쳐놓았다. 원래 계획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병원에 가려고 했다. 이미 풀어질 때로 풀어지고 주말 내내 바깥놀이를 해서 더러워진 붕대를 보니 유치원에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들은 붕대가 꾀죄해도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이었다. 내 만족에 가기 싫은 아들을 꼬셔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집 앞에 있는 가정의원은 9시에 문을 연다. 혹시나 손님이 많을까 봐 진료 시작 20분 전인 8시 40분에 병원에 갔다. 첫 번째로 진료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서 혈압계로 혈압을 재고 계셨다.
"엄마, 우리가 일등 아니야?"
"응, 할아버지가 먼저 오셔서 우리는 두 번째로 진료 봐야 해."
"왜?"
"왜긴 할아버지가 먼저 오셨잖아."
우리가 일찍 와서 아직 청소를 끝내지 못한 직원분은 바닥을 열심히 닦고 계셨다. 청소할 때 누가 길을 막으면 짜증 나는 마음을 아는 터라 아들을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가정의원에 있는 3층에는 치과가 하나 더 있다. 맞은편에 늘 임대라는 큰 글자가 붙여진 빈 상가가 있는데, 어느새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병원 직원분에게 물어보니 2층 헬스장이 확장해서 3층도 쓴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문 닫는 헬스장이 많다고 하던데 이 상가 헬스장은 확장까지 하는 걸 보니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매해 건강검진을 하면 근육량이 줄어들고 있는데, 나도 큰맘 먹고 헬스장을 끊어야겠다는 야심 찬 충동이 일었다.
한참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아들은 더워서 인지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고 졸랐다. 어쩔 수 없이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엄마, 짧은바늘이 9에 있고, 긴 바늘이 12에 있으면 아홉 시인데, 왜 의사 선생님 없어?"
"그러게, 늦으시나 봐."
"왜?"
"그건 엄마도 모르지."
아들은 요즘 '왜?'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정말 왜가 필요할 때는 대답을 해주겠는데 정말 이유 없이 '왜'왜 거릴 때가 있다. 알고 싶다. 아들은 '왜'그러는지를.....
분명 9시 진료 시작인데 9시 20분이 넘도록 의사 선생님이 오지 않으셨다. 결국 참다못해 직원분에게 이유를 물었다. 이유인즉 다른 지역에 사셔서 매일 아침에는 차가 막혀서 늦게 온다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이라..... 시간 약속은 잘 지키는 나로서 정말 이해가 안 됐다. 그럼 진료를 9시가 아니라 9시 반에 시작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선생님이 오셨다.
늘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셔서 좋았는데, 9시에 진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가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니 다른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같은 이유가 있는데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굳이 나의 시간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데 난 오늘 나와 나의 아들의 시간만 실컷 잡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