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도 내 삶이다.

살아가는 이유

by 좋은아침

책을 읽다 보면 나의 눈과 마음에 쑤욱 들어오는 글귀들이 있다. 좋다고 생각하면 책에다가 밑줄도 그어보고, 노트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서 옮겨 적는다. 적어 놓은 문장이 좋으면 생각이 날 때마다 노트를 뒤적거려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마음에 새기기도 한다.


최근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좋아서 다시 한번 읽고있다. 저자의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삶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못해 나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구해서 돈을 버는게 재미있었다. 많은 돈은 아니어도 돈이 있으니 조금은 나에게 전과는 다른 자유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 돈을 쓰는데 재주는 없어도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장을 옮겼다.


돈은 더 많이 벌었지만 그만큼은 오로지 날 위한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런 시간이 사라지니 나의 여가는 맛난 음식을 먹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가족을 비롯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이 귀찮아졌다. 나의 귀찮음이 심할 때는 약속을 잡고 몇 시간 전에 아프다는 핑계, 바쁘다는 핑계로 깨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친구로 남아있는 존재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당연히 지금은 한 번 만나는 것도 소중하고, 만나면 오로지 상대방에게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날 돌볼 여유가 없던 시기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자주 휩싸였다. 일이 숨 막힐 정도로 찾아오면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에서야 그 당시 그런 감정이 강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과거의 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오히려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를 죽이기 바빴다.


나를 이끌만한 미래가 없으니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뜨거운 날에 며칠 동안 빗물을 받아먹지 못한 식물처럼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살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을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킬 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현재의 삶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것 같다. 과거보다 더 맛난 것을 먹는 것도 아니고 더 값비싼 뭔가를 사는 것도 아닌데 심적으로 더 충만한 느낌은 든다.

지금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밤에도 수십 번 깰 때 100일의 기적을 기다렸다. 100일이 넘으면 수면 패턴도 정해져서 푹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나의 수면 부족을 견디게 해 주었다. 그러나 100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서 그 이후로 마음속으로 일수를 늘려 미래에 펼쳐질 기적을 기다렸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이는 돌을 지나고 지금은 여섯 살이 되어있다. 아마도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육아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아이는 자라나고 그 시간이 지나갈 거라는 기대감 덕분이 아니었을까?


책을 통해서 이해한 개념이 내 삶에도 실현이 되었던 거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문장도 노트에 갈무리해놓았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왜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살까?’는 쉽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명쾌하게 한 방에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는 의외인 인물이 많으니 있기는 하겠지만 내 주변에는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해 한 번에 답을 내놓은 사람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왜 사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주어진 삶이라서? 그냥? 남편과 아이가 있어서? 부모님이 계셔서? 친구들이 있어서? 등등 질문에 관한 수많은 이유가 떠오른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틀린 답이어도 상관없지만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매운 것을 먹으면 매운맛을 느끼고, 짠 음식을 먹으면 짠맛을 느낀다. 나는 내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정과 느낌을 알려면 책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등의 행위들을 해야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나를 알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때로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추진력을 주기도 한다.

오늘의 행동으로 내일의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은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나에게는 살 이유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글로 정확하게 표현을 한 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내가 사는 삶이 솔직히 두렵지 않다. 혼자 있을 때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도 예전만큼 그것들에 덜 얽매인다.

어렴 풋이 왜 사는지 알기에 어렴풋이 어떤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내 안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어렴풋이 아는 바를 조금 더 명확하게 알게 되지 않을까?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니 뭔가 말이 어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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