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도화지

제 삶의 도화지를 채우고 있습니다.

by 좋은아침



미술시간이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도화지가 학생들 앞에 놓여있다. 선생님은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리라고 한다. 선생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색연필을 쥐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멀뚱멀뚱 하얀 종이만 바라보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도 그리지 못하는 아이도 뭔가를 그려야만 한다는 사실은 인지한다. 그러나 그 인지가 곧장 행동으로 옮겨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연 무엇이 아이의 색연필 끝을 움직이는 걸까?


내가 태어나서 이 땅에 숨을 쉬고 산지를 계산해 보면 37년이 되어간다. 37년이란 시간은 13505일이다. 일을 시간으로 곱하면 810300시간이 된다. 37에서 작은 단위로 분절되는 일과 시간은 37보다 더 큰 수로 변한다. 년, 일, 시를 빼고 커져버린 수를 생각하면 나는 많은 날을 그 시간 속에 살았다. 나보다 오래 사신 분이 보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말이다.

내 삶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도화지에서 비롯되었다. 처음 그 도화지는 나의 의지보다는 나를 둘러싼 누군가의 의도로 조금씩 그림과 색을 채워갔다. 갓난아이가 의지가 있다면 얼마나 있겠는가? 갓 난 티를 벗고 뭔가 하려고 해도 아이에게 원대한 꿈이 있었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그냥저냥 하루를 신나게 보냈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콕 찍어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나의 도화지에 나의 의지가 조금씩 들어간 그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때론 그림은 그림이라 부르기 힘든 형체로 나타났다. 가끔은 누가 보아도 멋지고 베끼고 싶을 정도로 멋진 그림이 완성되기도 했다. 나의 그림을 본 따 자신의 도화지를 채운이도 있었지만 금방 싫증이 나 쓱쓱 지우개로 지우거나 다른 색으로 칠한 것을 본 적도 있다.


만약 나의 흔적이 남은 그림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그들은 나와 같은 삶은 살았을까?


10대, 나의 도화지는 색이 참 많았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갔고, 돌아서면 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다. 꿈을 가지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믿었었다. 가끔 우주 정복을 꿈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망상도 꿈에 편입시켜버렸다. 그 당시에는 먹고 싶은 것도 많아서 하고 싶은 것 반, 먹고 싶은 것 반으로 빈 종이를 채웠다. 내 도화지는 음식 전단지와 상품 안내서 중간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린 그림을 살펴보자. 배경은 딱히 없었다. 배경보다는 도화지를 차지하고 있던 각각의 인물들이 중요했다. 문제는 도화지의 주인공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의 접점이 없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나는 뿔테 안경을 쓰고, 회초리인지 지시봉인지 모를 막대기를 한 손에 쥐고, 책은 두 세권 옆구리에 낀 인물도 그려냈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강도를 순진하게 모르던 때라서 입안의 이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웃고 있었다. 그밖에 도화지에는 하고 싶은 일이 직업과 연결 지어 있었다. 경찰관, 치킨 집 사장, 백수, 건물주 등 딱히 직업이라고 부르기 힘든 일을 갖고 있는 모습의 사람들도 도화지의 공간을 차지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선생님처럼 하나같이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웃고 있었다.


10대의 먹성은 나의 도화지를 음식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시골에 살고 밀가루와 인스턴트를 입에 대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평을 단 음식들을 주야장천 그려나갔다. 갓 튀겨낸 노랑 치킨, 데리야키 소스와 마요네즈가 적당히 섞인 정체불명의 패티로 만들어진 햄버거, 한 입 먹으면 땀이 날 것 같은 떡볶이 등으로 말이다. 이것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부모님이 잘 사주지 않는 것들이었다.

20대가 된 이후로는 미친 듯 치킨, 햄버거, 떡볶이를 사 먹었다. 사 먹는 순간만큼은 10대의 도화지가 실현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알을 낳기 위해서 회귀를 한다. 지나친 나트륨과 강한 MSG로 굳을 줄 알았던 나의 혀는 다시금 어린 시절에 맛보았던 심심한 나물, 아삭한 김치, 걸쭉한 된장국을 향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좋은 신호겠지만, 10대의 강렬했던 열정 하나가 빠진 것 같아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20대, 나의 도화지는 무슨 색이었을까? 그림이 많았을까? 하얀 도화지에 그림이 가득 차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취업, 돈, 성공을 상징했다. 그림에는 늘 색도 정해져 있었다. 다채로운 10대의 색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회색, 검은색, 두 색의 농도만 조금씩 다른 색들로 채워져 있었다. 가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강력한 색상이 목적 없는 그림과 짝을 이루었다. 늘 그 짝은 어울리지 않았고, 불편해 보이기까지 했다.

20대에 나를 그대로 들어내는 일이 경쟁 사회에서 지는 걸로만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를 띄우기보다는 남들과 잘 어울려져야만 나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0대의 그림은 나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추상화를 선택했다.

경제적 독립은 꼭 해야 했기에 돈을 상징할 수 있는 지폐가 꼭 들어가 있었다. 그 지폐 안에는 나를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인물 마냥 그려내었다. 늘 뭉크의 그림에서처럼 나 자신의 정신 상태를 두 손 모아 부여잡아야만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죽어있어서 쳇바퀴 위를 열심히 뛰었다.

가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자유보다는 반복되는 일의 쇠사슬을 잠시나마 끊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날 사로잡았다. 그럴 때면 돈이라는 상징을 그나마 유추할 수 있었던 그림은 누구도 이해를 못하는 추상화로 변해버렸다. 문제는 나도 내가 그린 그림을 이해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나는 30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을 향해 걸어가는 건지 달려가는 건지 모르는 시기에 놓여있다. 내 도화지에는 내가 그동안 꿈꾸지 못했던 것으로 그림이 채워져 있다. 내 그림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남편과 아이다. 20대에는 알지 못했던 색으로 남편과 아이는 그려져 있다. 남편과 아이가 함께하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기도 하고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늘 그림 속의 남편과 아이가 광고에서 등장하는 가족처럼 “우리 가족에게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존재하지 않아요. 정말 좋은 일만 생기는 집이랍니다.”라고 하며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집처럼 다툼도 있고, 울음도 존재한다. 다만 분쟁이 일어나도 예전처럼 색이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어둡지 않다.

그렇다면 나의 도화지는 여기에서 끝인 건가? 아니다.


나의 도화지는 여전히 새로운 그림과 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남편과 아이에게 향했던 그림들은 나를 주인공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지금 나의 그림과 색은 홀로 서서 나만을 바라보았던 20대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가득 채워진 10대의 그것도 아니다.

엇비슷한 나의 얼굴은 내가 그동안 보내온 시간이 덧대어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옮겨 붙어있다. 색은 또 어떠한가? 색은 빨간색이라고 해도 가끔은 노을을 담기도 하고, 아기의 불그스레한 볼을 닮기도 한 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하나의 색과 그림에도 나를 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그림도 아니다. 오로지 나의 그림들은 내가 주 관람객이 되어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준다. 간혹 지나가다가 누군가 나의 그림을 따라 하거나 혹평을 해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겨 버리면 그만이다.

30대, 일을 그만둔 것을 제외한다면 살림과 육아라는 새로운 분야의 개척이었다. 무엇이 그림에 영향을 주었단 말인가? 나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만이 나를 바꾼 것은 아니다. 그 소리에 맞춰 행동도 생활 습관도 달라졌다. 내게 있어서는 급변이지만 남들에게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 삶에 책, 글쓰기, 소중한 사람을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 세 가지가 나의 도화지의 모습을 달리했다. 책과 글쓰기를 통해 나를 다스리는 힘을 얻고 있고, 내가 얻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었고, 나누고 있다. 단순하지만 꾸준함이 필요한 이것들이 나의 변화의 주범이다.


내 삶에 채우지 못할 도화지가 등장할까 봐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꼭 채워야겠다는 악착같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나를 향한 그림의 1인 관람객이자 동시에 평론가로 남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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