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는 동생이다. 늘 그렇듯 집에 있을 때는 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는 게 싫어서 스피커 버튼을 누른다.
“와이?”
“언니, 내가 재미난 이야기 해줄까?”
“좋지. 무슨 얘기야?”
“아니, 우리 신랑이 어렸을 때, 시어머니가 오빠가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봤었대. 그런데 오빠가 뭐라고 대답한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지구 정복? 대통령.”
“진짜 웃겨. 오징어가 되고 싶었대.”
“오징어?”
오징어라는 단어를 듣고 오징어를 말한 이유를 듣지 않았는데 나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낄낄거리며 웃는 나의 웃음소리가 끊기자 동생이 말을 이어나갔다.
“오징어가 왜 되고 싶었는지 알아?”
“왜?”
“오징어가 다리를 8개 가지고 있을게 너무 멋있었대.”
제부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껄껄 웃는 와중에 전화 너머로 조카가 ‘우리 아빠는 오징어야.’라는 말이 들렸다. 우리 제부는 고고한 학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다. 말수도 적고 행동도 늘 조심하는 편이다. 그런 제부의 꿈이 오징어였다니 앞으로 제부를 볼 날이 생기면 오징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텐데 큰일이다.
분명 제부를 보면 나는 피를 토할 정도로 웃을게 분명하다. 가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말에 꽂히면 자다가도, 먹다가도 생각나서 헤죽헤죽 미친 사람처럼 웃어댄다. 거기다 웃음의 대상이 나의 눈앞에 있다면 나의 웃음을 막을 방법이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제부를 못 본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겠다. 오징어라…….
제부의 티 없는(?) 어린 시절을 들으니 나 역시도 그런 시절이 있던 게 떠올랐다. 나도 꿈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직업이 아니라 그냥 되고 싶은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참고로 시골에서 자랐다.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지금도 당장 들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면 잘한다.
어렸을 적에 했던 농사일을 적으라면 그 가짓수가 많다. 그중 생각나는 것부터 적자면 고추 따기, 파 심기, 녹두 따기, 깨 털기, 고구마 캐기, 농약 주기 등등이다. 농약 주기에서는 슬픈 추억이 있다. 엄마가 바빠서 농약을 주는 아빠를 따라가지 못하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농약을 주는 아빠를 돕고 나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농약을 주느라 학교에 늦게 간다는 사실보다는 샤워를 해도 내 몸에서 농약 냄새가 날까 봐 걱정했던 예민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학교 가기 전에 했던 농사일이 그토록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부모님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몸이 자라는 만큼 마음도 자랐나 보다.
이렇듯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늘 농사일에 얽매어 있었다. 그나마 겨울에는 일이 없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고향이 바닷가 근처라서 굴도 따와서 파는 바람에 겨울에는 하우스에서 온 가족이 모여서 굴을 깠다. 지금도 조새(굴까는 도구)만 있으면 굴을 척척 잘 깐다. 대신 조새를 잡고 내리쳤던 오른쪽 어깨는 무리하면 아직도 욱신거린다.
이렇듯 내 주 업무가 농사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에 지겹도록 일을 했다. 농사일을 할 때마다 나는 ‘돌멩이’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있는 돌멩이가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간신히 찾아야만 보이는 그런 돌멩이 말이다.
남편은 내가 돌멩이가 되고 싶었다고 하자 돌멩이보다는 ‘개’가 낫지 않냐고 했다. 개? 개는 먹이를 찾아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어느 집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팔자가 상팔자인지 거지 팔자인지 나오기에 개는 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었다.
오직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땅에 콕 박힌 돌멩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 일하고 있으면 돌 팔자가 부러워 한가해(?) 보이는 돌만 보면 발로 차거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 곳에 돌을 던지는 악취미도 있었다. 아마 나로 인해서 흙이 된 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오징어에서 돌멩이까지 이야기가 흘러들었다.
멋진 다리가 8개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오징어와 돌멩이가 되고 싶었던 제부와 나의 어린 시절이 지금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직업이 아니라 되고 싶은 존재를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뭐가 되고 싶어 할까 급 궁금해진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