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도 내 삶이다.

코 고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

by 좋은아침

‘으, 덥네. 에어컨이 꺼졌나.’


전날 아는 분이 밤에 선풍기만 켜고 잤더니 시원해서 에어컨을 안 틀었다고 했다. 무더위가 시작되고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에어컨을 켜고 잤던 터라 솔깃했다. 에어컨을 틀고 자니 온 가족이 목이 칼칼해서 안 켜도 힘들고, 켜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전 에어컨을 안 틀기에는 후덥지근해서 5시간 후에 꺼지는 예약을 걸고 잤다. 5시간 이 지나고 정확히 한 시간 후에 더워서 깼다. 다시 에어컨을 켜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나의 뒤통수가 허전했다. 나의 묵직한 머리를 받쳐주는 내가 애정 하는 베개가 사라진 거였다. 나는 신랑과 아들과 달리 잠버릇이 없어서 누운 대로 아침에 그대로 일어난다.

암막 커튼이 창문을 가리고 있어 컴컴해서 베개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아 핸드폰 화면을 켜고 침대 주변으로 불빛을 비추어 보았다. 왼쪽에서 자고 있는 아들 쪽을 비추어보니 아들은 자신의 베개를 끌어안고 180도 회전을 해서 자고 있었다.


오른쪽을 비추어 보니 범인이 밝혀졌다. 바로 남편이었다. 아들과 나는 9시 전에 자고 남편은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느라 조금 늦게 자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아들과 나는 먼저 자고, 남편은 거실에서 나름의 즐거운 자유(?) 시간을 보내고 잠잘 때쯤 안방으로 들어온다. 가끔은 거실 소파에서 늦게까지 놀 생각으로 자신의 베개와 이불을 들고나가기도 한다.


전날에도 볼만한 것을 찾았다며 소파에서의 외박을 위해서 이불과 베개를 들고나갔다. 거실과 안방에 에어컨을 동시에 틀었던 터라 잘 때쯤 추워서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남편. 외박 물품인 자신의 베개와 이불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뻔뻔하게(?) 나의 베개를 강탈하여 얼굴을 푹 박고 자고 있었다. 괘씸죄로 베개를 확 빼앗으려 했지만 얼굴을 베개에 묻은 채 양 팔로 베개를 안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거실 소파로 가서 남편의 베개를 가지고 와야만 했다. 우리 부부는 꼭 베개는 각자의 것만 사용한다. 이유인 즉 남편의 흉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은 입을 벌리고 자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자다가 꼭 베개에 흔적을 남긴다.(남편 미안하오. 사실은 사실대로 적어야 하기에......) 다행히 이날은 베개커버를 빨아서 세제 향만 솔솔 풍겼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나의 베개를 빼앗지 말아 달라는 부드러운 협박을 했다. 본인도 안 하던 행동을 해서 인지 웃으면서 회사에 출근했다.

베개 이야기를 하니 남편의 코골이에 대해서 할 이야기 있다.


결혼 전, 시댁에 첫인사를 드리러 간 날. 시어머니는 조용히 나를 불러 아들이 코골이가 심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셨다. 얼마나 심하길래 어머니가 이리도 걱정을 할까 싶었다. 남편도 자신의 코골이로 인해서 치료를 받은 이력을 낱낱이 일러 주었다. 아마도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계속 ‘자신은 코 고는 소리가 크다.’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뜨악. 정말 남편은 코 고는 소리가 심각했다. 결혼하고 한 달은 잠이 오지 않았다. 결혼 전에는 나는 야행성이어서 늘 늦게 자는 버릇이 있었던 터라 남편이 먼저 자고 눈을 감으면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다. 베개로 귀도 막아보고, 귀를 막을 수 있는 이것저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불편해서 더 잠을 설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달 넘게 잠을 잘 못 자니 몸이 너무 피곤해서 내가 먼저 잠이 잠들었다. 그날 나는 한 달간의 수면 부족을 보상하는 달콤한 숙면을 취했다. 어찌나 숙면을 취했던지 푸석푸석하던 얼굴에 번쩍번쩍 광이 날 정도였다. 역시 피부에는 잠이 보약이다.


그 이후로부터 남편보다 늘 먼저 잔다. 먼저 자면 나는 아무리 남편이 옆에서 코를 골아도 중간에 깨지 않고 잠을 잔다. 남편은 나의 이러한 숙면을 간혹 부러워한다. 오죽이야. 나는 친언니와 자다가 언니가 식중독으로 119에 실려갈 때도 아침에서야 깼다. 밤새 고생해서 핼쑥해진 언니를 보고 놀랐지만 언니는 그 부산함에도 잠을 자는 나의 능력에 놀랐다고 했다.


이렇듯 신랑의 코골이에 적응해진 나의 능력을 걱정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친정에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올 때다. 특히 여름에는 거실 에어컨을 켜고 모든 방문을 열고 자기 때문에 신랑의 코골이는 온 집안이 울리도록 라이브로 연주된다. 처음 신랑이 나의 친정집에 잘 때 엄마가 아닌 아빠가 ‘너는 잠은 제대로 자니?’라고 할 정도였다.


내가 먼저 잠들면 귀가 막힌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다행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성능 떨어지는 청력도 아들이 ‘끙’하는 작은 소리에는 즉각 반응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의 신비한 선택적 청력에 대해 감탄하는 중이다.

가끔 남편은 코골이 심한데도 내가 잘 못 듣는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표한다. 이렇게 내색할 정도로 신랑에게는 코골이가 스트레스다. 신랑의 코골이를 잘 듣지 못하는 나를 보고 언니는 신랑과 천생연분이라고 한다. 코 고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천생연분이라고 불린다니 참 천생연분이라는 단어의 낭만은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낭만이 없으면 뭐 어떤가. 서로 사는데 불편함이 없으면 그만이지. 오늘도 코 고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의 하루는 무사히 시작되고 무사히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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