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둠을 무서워하기 시작했어요.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요즘 아들은 저녁밥과 아침밥을 다 먹으면 자기 집에서 내가 같이 자주기를 원한다. 체중이 잘 늘지 않는 아들이라서 함께 자는 조건으로 밥을 퍼주면 평소에 먹는 것보다 더 먹어서 아들의 조건을 r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 옆에 누웠다. 밤에는 더위가 조금은 누그러져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선풍기만 켜고 생활한다. 아무리 더위가 주춤한다고 해도 서로가 바짝 붙어있으면 조금은 덥게 느껴진다. 엄마가 덥든 말든 아들은 내 옆에 콕 붙어서 눕는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니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 할머니가 손녀의 손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생각이 났다.
“쫑아, 손바닥을 보면 여러 개의 선이 있어. 쫑 손 봐봐. 이게 생명선이야. 이 선이 길수록 오래 살 수 있대.”
“엄마, 내 것 봐봐. 나 오래 살아?”
“쫑은 엄청 오래 살겠는데.”
“그럼 엄마는?”
“엄마는 쫑보다 생명선이 길지 않네.”
“그럼 엄마는 나보다 오래 못 사는 거야. 그럼 엄마는 나 보다 먼저 죽는 거야?”
이때부터 쫑의 얼굴은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큰 반응이 없었는데, 눈이 빨개질 정도의 반응을 보고 놀랐다. 차마 먼저 죽는다는 말은 못하고 아들이 사는 만큼 오래 산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은지 백 년, 천년, 천백만 년은 살아달라고 나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댔다.
절대 본인은 아빠와 엄마 없이 혼자 남기 싫다면 오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내 손을 잡고 계속했다. 아들이 예전보다 감정의 폭이 커진 게 기특하면서도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겪어야 할 감정의 바다에 놓일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휘몰아쳤다.
“쫑아, 쫑 주변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도 있잖아. 쫑에게는 늘 누군가 있어.”
“그래도 엄마.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우리보다 먼저 죽잖아.”
엄마, 아빠 다음으로 가까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먼저 죽을 수 있다는 대답에 괜스레 코 끝이 찡해졌다. 더 이야기했다가는 아이나 나나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화제를 딴 대로 돌렸다. 아들은 아빠의 생명선도 꼭 확인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화장실에 갔던 남편이 안방에 들어오자 아들은 남편의 손금을 재차 확인하고 나에게 선이 긴지를 물어봤다.
아빠의 생명선은 너무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내 옆에 와서 누웠다.
요즘 아들은 평소와 다른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그중 하나는 어둠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밤에 불을 켜지 않아도 거실, 부엌을 잘 돌아다녔다. 최근에는 불이 켜져있지 않으면 부엌에 가서 물을 마셔야 해도 가지 않고 버티거나 나나 남편이 함께 동행을 해주기를 청한다.
이틀 전에는 거실 에어컨을 켜고 각 방문을 다 열어 놓았다. 시원한 공기가 각 방에 스며들 수 있게 말이다. 늘 그렇게 해왔기에 방문이 다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안방 문이 닫혀 있는 게 보였다.
“쫑아, 혹시 방문 닫았어? 엄마는 열어 놓은 것 같아서.”
“응, 내가 닫았어."
“왜?”
“깜깜해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무서워서..... 아까 엄마가 요리할 때 닫았어.”
쫑이 앉은자리에서 보이는 불 꺼진 안방이 쫑에게 다양한 상상을 자극했나 보다. 쫑의 달라진 모습이 낯설어서 주변의 같은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물으니 비슷한 상황이었다. 쫑보다 훨씬 이전부터 어둠을 무서워하는 친구도 있었고 최근 들어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 친구도 있었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나 혼자만 겪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의 일부분이라 생각되니 머릿속이 가벼워졌다.
문득 어렸을 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까지 나는 유독 겁이 많았다. 특히 잠잘 때가 가장 무서웠다. 한 방에 언니랑 동생, 할머니와 함께 잤는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다들 먼저 자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안으로 빛이 들어와도 구석진 곳의 어둠만 보면 무서운 생각이 몰아쳤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억누르면 예전에 읽었던 공포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웃긴건 낮만 되면 공포소설을 읽는 것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눈을 감아도 깜깜해진 눈앞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잔적도 많았다. 그때의 습관이 남아서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전에 발까지 이불을 덮지 않아도 얼굴만큼은 꼭 덥고 자서 친구들을 놀라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두려움이 사라진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들이 나처럼은 오랜 시간 동안 어둠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 전부터 어둠 속에 손을 잡고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있다. 당연히 아들의 동의를 얻고 말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도 엄마, 아빠가 주먹으로 뻥! 발로 뻥! 차 버린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과하게 허공에 대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면 아들은 좋아서 히죽거리고 좀 더 편안함을 느낀다.
문득 내가 어린 시절 어둠을 무서워할 때 나를 이해해 주고 든든하게 얘기를 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은 더 빨리 어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것이다. 어렸을 때 무섭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뭐가 무서워.'였다.
그래도 아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수 있는 ‘나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밤에도 울트라 초특급 핵파워 주먹질과 발길질을 허공에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