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니 허벅지가 땅땅해지는 동시에 몸에 피로도가 올라갔다. 월요일은 몸에게도 휴식을 주기 위해서 자전거 타기를 건너뛰었다. 하루 쉰 게 몸에 달콤함으로 각인이 되었나 보다. 화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는 중에 자전거 타러 갈 시간이 되니 탈까? 말까? 의 두 가지 선택지가 내 심장을 콩콩 두드렸다. "탈까"는 천사의 속삭임, "타지 말까"는 악마의 속사임.
피곤함이 남아 있던 나의 육체와 정신은 악마를 선택하고 말았다. 읽고 있던 책을 아들이 깨기 전까지 읽었지만 늘 해오던 하나의 일과를 건너뛰었다는 사실은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엄마, 오늘도 자전거 탔어?”
아들은 엄마가 늘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을 알기에 일어나자마자 나의 죄책감을 상기시키는 질문을 던졌다.
“아니, 오늘은 안 갔어. 엄마 몸이 조금 피곤해서. 내일은 가야지.”
내일은 간다는 선언을 아들 앞에서 했으니 수요일에는 꼭 나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요일 새벽 4시.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지 226일 째이다. 작심삼일을 넘고, 몇 달이 지속되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나의 몸에 콕 박혀버렸다. 알람을 4시 30분에 맞춰 놓지만 몸은 저절로 4시에 나의 정신을 깨우고 만다. 정신이 몸을 깨운다는 말이 맞는 건가? 나의 지인들은 4시 반에 일어나려면 도대체 내가 몇 시에 자는지 묻곤한다. 아무리 늦어도 10시는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일찍 자기에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잠자는 총량은 많은 편이다. 피부가 재생되는 시간에 수면을 택하니 로션도 바꾸지 않았는데도 피부결이 좋아지는 부가적인 효과를 누리고 있다. 순전히 나의 기분 탓인가?
4시에 일어나서 30분을 더 잘까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책장에 방치해 놓았다가 읽기 시작한 범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를 읽어 내려갔다. 결혼도 안 하신 범륜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콕 맞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내 마음을 튕겨나가기도 했다. 튕겨나간 부분은 다시 이해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아직은 내 그릇이 작아서 담아지지 않는다.
5시 20분.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각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 시계를 보니 딱 그 시각인 것이다. 이틀간 자전거를 쉬고, 어제 검은 유혹에 빠져서 인지 내 안의 ‘하지 마라’ 부정이가 외쳐대기 시작한다. 그러면 안 돼. 돼. 돼. 돼에 몸이 이끌려 가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못하는 법.
무작정 레깅스를 입고, 양말을 신고, 티셔츠를 갈아입고,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고, 헬맷을 쓰고, 운동화를 신고 현관을 문을 열었다. 문밖에 나왔으니 무조건 전진이다. 휴대폰 거치대에 휴대폰을 고정시키고 사이클링 어플을 켰다.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나 자신에게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역시! 넌 할 줄 알았어.
아파트 현관을 나오니 여전히 해가 뜨지 않아서 어둑어둑했다. 해가 뜨지 않은 것과 별개로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서 살짝 컴컴하기도 했다. 날씨 어플을 확인해보니 6시쯤 비가 올 확률이 40%여서 안심하고 출발했다.
500m를 갔을까 안경에 뭔가가 떨어졌다. 설마 비? 하찮은 비라고 생각하고 곧 그칠 거라고 생각해서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또 앞으로 100m 후득후득 팔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휴대폰 액정 위에는 빗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에이 더 내릴까? 그칠 거야. 지나가는 소나기겠지.’라는 생각으로 앞으로 더 갔다. ‘후드득, 후드득’ 비가 올 거를 예상하지 못한 채 운동 하러 나온 사람들은 재빠르게 각자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도 회귀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끼어 유턴을 했다. ‘후드득, 후드득’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미 옷은 축축하다.
운동은 못했는데 헤죽헤죽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 단디 먹고 운동하러 나왔는데 운동을 못하는 꼴이라니. 하늘에서 내가 운동하기 귀찮은 맘을 알고 선물로 비를 뿌려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서 자전거를 못 타는 아쉬움보다는 집에 가서 씻고, 커피 마시면서 책 읽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나란 인간. 더 좋아하는 거를 생각하면 늘 희죽 댄다.
그래도 집에 오니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는 2킬로 정도였다. 이건 운동을 안 한 것도 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이다. 그래도 아들이 운동했는지 물어보면 비 핑계를 제대로 댈 수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베란다가 있는 방의 창문을 열었다. 이미 소나기는 그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금세 땅바닥이 다 젖었다니! 비가 왕창 내리기 전에 돌아온 사실이 이토록 안심이 될 줄이야.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니 책 내용이 더 달게 느껴진다.
전자레인지로 돌려서 금방 식어버린 커피 한 잔, 결혼도 안 하신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책을 읽으니 그냥 모든 게 좋다.
그런 날이 있다. 이색적인 일이 없는데도, 화려한 일이 없는데도, 감정이 널뛰기하지 않는데도, 일상의 소소함이 나를 꽉 채우는 순간. 오늘 새벽 5시 45분이 나에게 딱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