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흔적 1

( 20대 추억의한자락)

by 좋은아침



“아이고, 여자 혼자 배낭여행한다고? 대단하네. 근데 나도 딸이 하나 있는데. 혼자 여행을 한다면 말릴 거야. 대단해. 대단해.”

“아, 걱정되니 당연히 그러실 거예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경주의 한 시장 골목에서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의 주머니에서 지불한 돈으로 칭찬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는 어묵을 먹으면서 말이다. 기차 여행을 혼자 시작 한 지 이틀째다. 청량리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갔다. 뜨는 해를 보기 위해서 간 곳인데, 날씨가 흐려서 한 줄기의 햇살도 볼 수가 없었다.

20대 나. 1년 365일 일에 파묻혀 살았다. 출근하지 않은 날조차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 생각을 하며 주말을 보냈다. 단 하루 완벽하게 쉴 수 있는 일요일도 늘 다시 돌아오는 다음 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반나절을 보냈고, 그다음에는 밀린 잠만 잤다. 가장 열심히 살았지만,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의심이 되었던 시기였다.

정동진을 여행의 첫 번째 도착지로 삼은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TV광고에서 보았던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면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품고 싶었다. 현실에 지쳐서 미래를 바랄 만큼 간절하지 않아서 일까? 나는 해를 보지 못했다. 원했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매일 뜨는 해에 큰 의미를 부여하겠다고, 이곳까지 와있는 나 자신이 웃길 따름이었다. 어디에서 보나 해는 해인데 말이다.


이번 여행은 세세한 계획 없이, 즉흥적인 나의 감정만 따르기로 했다. 정동진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안동 하회마을로 향했다. 왜 하필 그곳에 간 걸까?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회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초등학교 동창 중 한 명 이름이 안동 뭐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내 목적지를 정할 만큼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날 마을 구경, 탈 구경 조금 하다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낙동강 줄기만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과 푸른 물살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조선시대에 살 수만 있다면 남자 양반으로 태어나 신선놀음이나 하고 싶은 생각만 떠올랐다. 늘 꿈꾸는 것은 반대로 등장하니 노비로 태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싸늘해졌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해야 할 일도 없고, 돈도 벌지 않고…….’


오랫동안 염불처럼 혼잣말을 씹고 씹어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들을 물속에 던져 버리고, 경주로 향했다. 수학여행으로 여러 번 갔었던 석굴암이 다음 목적지였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고작 석굴암 밖에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의 선택지에 실소만 나왔다. 오죽하면 간간히 나의 여행경로를 듣던 동생은 혼자 수학여행 갔냐고 비아냥거렸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석굴암. 주차장에서 한 참을 걸어 올라가 맞이한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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